살바도르 달리 │ 창가의 인물 │ 1925 │ 스페인 마드리드 소피아왕비국립미술관

Salvador Dalí │ Figura en unafinestra │1925│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 Madrid, España

살바도르 달리(Dalí)의 작품은 테크닉 면에서 그의 선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기법을 그대로 이어 받은 듯 오소독스라는 말의 용례에 딱 들어맞게 아카데믹 하기 짝이 없으나 그의 유명한 기행처럼 소재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내 기준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기억의 지속성」이라는 달리의 작품을 보며 어린 마음에 이게 무슨 예술인가 했고 지금도 그의 작품을 보며 이 대단한 재능을 왜 이런 해괴한데 쓴 것일까 싶다. 하기야 기행, 기괴, 해괴가 예술이고 미술인 시대고 프렌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들이 오늘날 상상을 넘는 고가에 거래된다는 정보를 접하고 보면 대체 미술작품의 가치 기준이 뭔가 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달리의 작품을, 베이컨의 작품을 거저 준다면 우주의 기운이 내게 내려 앉은 것이라 작품을 당장 팔아 치워 갑부가 되는 행운은 아낌없이 누리겠으나 모조품이라 할지라도 그 그림들을 집에 모셔두고 걸어두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작품뿐 아니라 달리는 사생활에 있어서도 유명한 일화를 많이 남겨서 별 흥미 없이 대충 읽어 넘기기는 했어도 달리가 나이 스물 다섯에 아이가 딸린 열살 연상의 갈라(Gala)라는 여인과 결혼했고 그녀와 평생 해로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해서 이 잡문을 쓰려고 위키사전을 검색해보았더니 가관인 것은 갈라가 전 남편과 이혼하고 달리와 결혼한 후에도 전 남편과 계속 가까운 사이였다 하는데 이는 대놓고 표현하기 껄끄러운 상황에 대한 완곡한 영어 표현일 것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사자성어가 이에 해당할까? 위키사전의 갈라 달리(Gala Dalí) 항목에는 달리가 여성 성기 혐오증이 있어 -아니, 왜?- 갈라와 결혼할 때까지 성 경험이 없었다는 것, 갈라가 달리와 결혼 후에도 여러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달리가 캔달리즘(candaulism)의 원조 뻘을 자처했기로 오히려 이를 조장했다는 것도 쓰여 있는데 한영사전에도 그 어의 풀이가 없는 캔달리즘의 뜻을 여기서 풀어놓는 것은 객쩍은 짓은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미술작품과 그 작가를 두고 카테고리화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달리와 그의 작품들을 초현실주의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의 작품을 내 얕은 지식으로 해석할 수는 없고 '달리'를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하는 이유가 '달리'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달리의 작품 중에는 저렴한 나의 감성과 심미안을 파고 드는 우리 나라에서는 「창가의 소녀」또는 「창가의 여인」이라는 소개되는, 작품 소장처인 스페인 마드리드 소피아왕비국립미술관이 붙인 제목으로는 「창가의 인물」(Figura en una finestra)이라는 작품도 있다.

애초 이 작품을 책 등을 통해 달리 작품으로 안 것 같지 않고 우연히 웹 서핑 도중 발견한 그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림을 보며 내가 즐겨 듣던 「햇볕 드는 창가에서」(日なたの窓に憧れて)라는 노래와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노랫말도 그림도 봄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남녀간 사랑 행위를 암시하는 노랫말을 가진 곡을 들으며 또 남자로서 당연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누드보다 더 야하게 표현된 젊은 여성의 뒷모습 윤곽이 잘 살린 그림을 보며 봄 기운에 느끼는 아찔함과 비슷한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별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참 편한 세상이라 「창가의 여인」에 대해 이 참에 좀 더 알아보았더니 달리 나이 스물 한 살 때인 1925년 작, 달리로서는 막 화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시절 초기 작품이고 뒷모습을 보인 모델은 달리의 여동생 아나 마리아(Ana Maria)라 한다. 노래는 그렇다 쳐도 그림은 볼 때마다 묘한 설렘을 갖게 하는 내 나름의 걸작이다. 특히 삼라만상에 물이 오르고, 여자가 물이 오르고, 고목 나무 같은 내 마음도 그러한 듯 이 눈부시고 찬란한 계절에는 더욱 어울리는 걸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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