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인들│제임스 티소│미국 크라이슬러미술관
책에서 재미있는 그림을 봤는데 프랑스 출신으로 19세기말 빅토리아 시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영국에서 활동한 제임스 티소(James Tissot)의 「화가의 여인들」(The Artist's Lady)이라는 작품이다. 작품은 야외 레스토랑의 정경을 담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식기와 접시들이 가지런하고 빵이 놓여져 있으며 사람들은 요리(main dish)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와인을 주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등 그림을 보는 것 만으로도 들뜬 분위기에 함께 취할 것 같다. 작품은 감상하는 사람의 시선을 기준으로 먼 곳 레스토랑의 입구에서 웨이터의 안내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막 자리를 잡고 환담을 시작하는 사람, 웨이터에게 주문하는 사람, 와인 병마개를 따는 웨이터를 차례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작품의 방점이자 주인공은 아무래도 고개를 돌려 감상하는 사람을 향해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고 있는 미모의 여인이 될 것 같다. 여인의 표정은 흡사 비싼 레스토랑에 앉아 SNS에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셀카를 찍는 요즘 여성분의 그것과 무척 닮아 있어서 작위적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럽다.
화폭 하단 오른쪽에는 이제 막 자리를 안내 받아 의자에 앉으려는 여인의 옆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만약 이 여인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휑한 식탁이 드러나야 할 것이니 화가가 치밀한 의도를 가지고 구성한 작품인 것을 알 수 있고 '뒤돌아 보는 여인'을 보는 '옆모습 여인'의 표정도 무척 재미있다. 작품은 위로부터 건물, 화단, 사람 그리고 하얀 테이블보가 얹혀진 식탁 순으로 구도를 기막히게 잡은 잘 찍은 스냅 사진 같다. 이 모든 구성요소의 디테일 역시 사진 못지 않다. 물론 사진은 우연의 결과가 아닌 한 이 모든 요소들을 한 순간에 포착해낼 수 없다. 회화는 정지된 한 순간임과 동시에 화가의 머리 속에 담겨 있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일어난 움직임이 모여 구성되는 것이다. 그림 속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 이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고 많은 사람들이 19세기 말 유럽 회화를 사랑하는 이유이리라. 오래 전부터 티소의 그림을 보아 왔으나 그저 그런 그림이려니 하며 지나치다가 책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티소의 이 그림에 내 시선이 머문 까닭은 그림에서 흥겨운 왈츠가 흘러나오면 딱 어울릴 것 같은, 화폭에 충만한 들뜬 분위기 때문이었다. 티소의 그림 앞에서 바야흐로 봄이 가까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