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중반 즈음 『2030 에너지전쟁』(원제:The Quest: Energy, Security, and the Remaking of the Modern World)이라는 책을 깊은 생각 없이 주문했다. 주문한 책을 배달 받은 순간 천 페이지에 살짝 못 미치는 분량이 무척 부담스러웠는데 분량만큼 내용도 무겁고 또 지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달리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책의 요점은 근대 이후 석유 시장을 둘러싼 역사, 오늘날 원유시장을 작동시키는 메커니즘 그리고 향후 유가 전망에 관한 것이었다.
국제 유가는 2008년 이른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 배럴당 150달러 선이었다. 당시 유가가 짧은 기간 동안 가파르게 상승하자 골드만 삭스는 유가 전망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자면 어처구니 없는 사기처럼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 시대에 곧 진입하리라 호언장담을 했다. 망해버린 리먼 브라더스는 물론이려니와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한다는 이른바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하는 짓거리들이 대략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튼 이후 금융자산에 대한 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세계적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가 닥쳐 유가는 하락 추세로 반전, 저자가 책을 내놓은 2011년 경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가격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투영되기 마련이라 그때도 국제 유가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리란 전망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문가라고 하는 자들의 행태야 늘 뻔해서 국제유가의 상승전망을 내놓는 자들이 돌아서서 경기불황을 예고하는 일도 또 그때나 지금이나 다반사이다. 그런데 이때 『2030 에너지전쟁』의 저자 대녈 예긴(Daniel Yergin)은 고유가가 비정상적인 상황이며 유가는 하향 안정될 것이라 예견했다. 당시 나는 저자의 책에서 지금이야 일반상식 용어가 되어버린 셰일 가스(shale gas)니 셰일 오일(shale oil)하는 낱말을 처음 접했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했다. 전통적인 원유의 대체 에너지원인 셰일 오일과 셰일 가스는 가채 매장량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류가 꽤 오랜 세월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는 점, 다만 셰일 자원의 경우 채굴 및 정제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간 이의 개발사업이 활발하지 않았다는 점, 하지만 고유가의 지속과 함께 신기술의 접목으로 셰일 자원의 개발 비용이 떨어져 결국 유가는 셰일 자원 개발의 손익분기점 이상으로는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벌어진 사태는 저자의 예견 그대로, 우리가 보아온 그대로다.
오늘 무료한 가운데 뉴스를 검색하다 국제 유가가 다시 큰 폭으로 하락했고 덩달아 주요 원자재의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뉴스 기사들은 대부분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그 원인이라는 해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하자니 사람들은 같은 일을 두고도 각자 보는 시각에 따라 이를 다르게 해석하게 마련이라는 어느 현자의 금언이 떠올랐다. 2년전에 유가가 결국은 하락하고 말리라는 탁견을 내놓은 저자의 책을 잃고도 아무 생각 없었던 나같은 사람도 있게 마련인 것이 또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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