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2009
들으려 한 것이 아니라 퇴근 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톤이 낮은 그러나 날카로운 여자 음성이 들렸다. ‘아직도 내가 왜 화를 내는지 몰라?’ 그 소리에 놀라 옆을 훔쳐보니 젊은 여자가 남자를 노려보고 있고 남자는 폭발 일보직전인 표정으로 여자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남자의 ‘말을 해야 알지!’ 라고 얼굴에 써 있었다. 말 해주기 전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남자는 여자가 화 내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여자는 모른다. 그리고 여자가 화를 내면서도 무엇 때문에 내가 화났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를 남자는 모른다 .
이 짧은 해프닝의 결말을 보기 전에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며 '아직 몰라도 된다. 다만 저 아름다운 여자에게 어울리는 저 듬직하고 잘 생긴 청년이 여자가 화를 내는 것은 너와 끝내고 싶지 않다라는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젊어서 몰라서 내가 폭발해버린 적이 있던가?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이제 기억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