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애킨슨 그림쇼, 런던 웨스트민스터 템스강변 달빛의 반영, 1880, 영국 리즈미술관
훗날 인상주의자로 불린 화가들이 남부 프랑스의 강렬한 태양 빛을 쫓아 그림 그리러 산으로 들로 몰려 나갔을 때 그 산과 들의 바다 건너편 영국에서 달빛이 일렁이는 템스강 밤 풍경을 그리러 나간 존 애킨슨 그림쇼(John Atkinson Grimshaw)라는 화가가 있었다.
1836년 영국 중부 리즈(Leeds)에서 태어났다. 후에 그가 런던이나 리버풀, 스카버러(Scarborough) 같은 항구 도시 야경에 매료되어 이들 풍경을 화폭에 옮겨 놓은 이유는 내륙 출신들이 가지기 쉬운 항구와 바다에 대한 동경 탓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고 그 역시 처음에는 철도회사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직업 화가가 되길 원치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일찍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을 것이다. 직장 생활 틈틈이 갤러리들을 돌아다니며 다른 화가 작품을 관람했고 결국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직장을 그만두고 직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흐만큼은 아니지만 직업 화가로 나서기에는 결코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법 유명한 화가가 된 것이 그로부터 4년 후인 스물아홉이었다고 하니 확실히 재능도 있고 운도 따라준 화가였을 것이다.
기법으로는 당시 영국 화단의 유행이었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영향을 받았으며 젊은 시절에는 생동감 있고 정제된 완성도 높은 풍경화를 그렸는데 화가로서의 경력이 쌓여 가자 점점 그만의 독창적인 소재와 스타일로 그린 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회화에 있어 빛의 효과 특히 밤과 가을 풍경의 대가가 되었다. 그림쇼는 휴가철이 되면 리즈 동쪽 스카버러 항구에서 지내곤 했는데 그의 많은 작품들이 그곳 풍경을 담고 있거나 그곳에서 그려졌다. 때때로 런던에 머물며 항구나 선창의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1880년대에는 잠깐 동안 런던에 화실을 열기도 했는데 그림쇼가 당대 영국 대표 화가로 유명한 휘슬러(Whistler)의 동성애 친구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는 초상화나 장식화, 요정, 특히 성장한 매력적인 젊은 여인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극도로 장식성이 강한 작품들을 남겼다. 1890년대에 들어 그림쇼는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태의 작품들로 새로운 방향성을 찾게 되는데 휘슬러의 영향을 엿볼 수도 있는 작품들을 내어 놓았다. 안타깝게도 그림쇼의 이러한 새로운 모색의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1893년 쉰일곱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는 좋은 화가였기는 했어도 회화사에 의미 있는 걸작을 남긴 화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은 영국과 빅토리아 시대라는 시공간에 충실했고 특히나 요정(fairy) 같은 장식성이 강한 작품들은 내 취향도 아닐뿐더러 회화 작품으로서의 가치 또한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남긴 작품을 오늘날의 효용으로 보자면 팬시 노트의 겉표지나 꽃 편지지의 배경으로 참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에 담기는 달빛의 모습과 그 의미를 회화 속에 그보다 극적이고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화가를 나는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부댕(Boudin)의 하늘처럼 달빛에 관한 한 그림쇼는 그 어떤 회화의 대가보다 더욱 뛰어난 화가이다.
달빛도 없는 그믐의 캄캄한 밤을 건너 가을비가 내린다. 그 밤을 건너 낙엽이 지고 메마른 가지가 더욱 앙상해질 때 그 가지를 타고 떠오르는 가을 밤 만월을 기다린다. 미당 서정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라 했는데 미당 발치에서 그가 남긴 운에 댓구를 달 수 있다면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달빛이라 하겠다. 그림쇼의 작품들을 내가 각별하게 여기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영국 라파엘전파 화가 존 애킨스 그림쇼의 작품들
Paintings by John Atkinson Grimshaw
배경음악
Moonlight Echoes by Steive Raiman
John Atkinson Grimshaw, Reflections on the Thames, Westminster, 1880, Leeds Museums and Galleries, UK
John Atkinson Grimshaw, Nightfall down the Thames, 1880, Leeds Museums and Galleries, UK
John Atkinson Grimshaw, In Peril, 1879, Leeds Museums and Galleries, UK
John Atkinson Grimshaw, A Wet Moon, Putney Road, 1886, private collection
John Atkinson Grimshaw, View of Heath Street by Night, 1882, private collection
John Atkinson Grimshaw, Glasgow Docks, circa 1886, private collection
John Atkinson Grimshaw, At The Park Gate, 1878, private collection
John Atkinson Grimshaw, A Moonlit Evening, 1878, the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Spain
John Atkinson Grimshaw, The Pool and London Bridge at Night, circa 1884, private col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