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아내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많은 주방 용품들을 선물 받았다. 그 속에는 유명한 독일산 쌍둥이 칼 쌍둥이 가위도 있었는데 그때 우리는 그게 좋은 물건인 줄 몰랐다. 해외여행은커녕 나는 그때까지 서울과 부산 사이 국내선 항공편을 타본 게 전부였고 아내는 국내선 항공편조차 타본 경험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는 지금처럼 수입물자가 흔하게 우리나라에 들어오던 시절도 아니었고 수입품이 광고를 낼 턱도 없었는데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독일 행켈사의 쌍둥이표(Zwilling J. A. Henckels), 쌍둥이 칼 쌍둥이 가위가 좋은 물건인줄 우리가 어찌 알았으랴. 아내가 결혼할 때 받은 선물들은 그 후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며 사라져 버렸다.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귀찮다며 버린 것도 있으리라. 그렇게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며 우리는 쌍둥이 칼, 쌍둥이 가위가 좋고 귀한 물건인 줄 알게 되었다. 그 후 가끔 우리는 아내가 결혼 선물로 받은, 가치를 몰라 사라져 버린 좋은 주방용품들을 화제로 아쉬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영국 살 때 우리 가족은 차를 몰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을 거쳐 스위스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독일 라인강 물줄기를 따라 영국으로 돌아오는 참 길고 고단했던, 그러나 즐겁고 오래 추억에 남을 여행을 했다.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 네덜란드 국경을 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독일 도시가 아헨(Aachen)이었다. 아헨의 그 아름다운 대성당을 구경하고 나서 아내와 나는 이번에야말로 독일에서 쌍둥이 칼, 쌍둥이 가위를 사가지고 돌아가 그간 우리의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아헨 대성당을 보는 둥 마는 둥 구경을 마치고 시내 백화점으로 갔는데 아내는 쌍둥이 칼 쌍둥이 가위에 붙은 가격표를 보고 아내 표현으로는 그깟 주방 가위 하나에 우리 돈 삼 만원이 넘는 다는 걸 확인한 후 다음에 사자고, 빨리 백화점을 나가자고 재촉했다. 당시 아내는 영국 마트인 막스앤스펜서(Marks and Spencer)에서 파는 제품들의 가성비에 꽤 만족해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파는 제품들의 품질이 꽤 괜찮기는 했어도 까고 보면 중국산인 주방 가위 몇 개 사 들고 귀국했다. 이번 독일 출장 일정이 잡혔을 때 아내는 출장 선물로 쌍둥이 가위를 사오라 부탁했다. 영국에서 마련한 주방 가위를 한동안 잘 쓰기는 했어도 언제부터인가 가위 가운데 조임 부분이 헐거워져서 내가 드라이버로 몇 번을 조여준 기억이 있다. 그런데 바쁜 출장 일정에, 그 사이 틈틈이 좋은 구경에 언제 짬을 내어 쌍둥이 가위를 산단 말인가? 출장 중에 몇 번 맥주 사러 독일 마트에 들렸는데 동네 마트에서는 쌍둥이 가위를 팔지 않았다.

 

그러다 주말에 브레맨 구경 갔다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카르슈타트(KARSSTADT)라는 독일 백화점 체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브레맨의 카르슈타트 5층 주방용품 코너에 쌍둥이 칼, 쌍둥이 가위가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가위 하나에 가격은 역시 대략 삼 만원 정도, 아마 아내 본인 출장이었다면 가격을 확인하고 이마트 가위도 좋은데 뭐 라며 사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부탁한 쌍둥이 주방 가위에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할 것 몇 개 더, 그리고 내친 김에 과도로 쓸 쌍둥이 칼 하나까지 산 후 득달같이 이 기쁜 소식을 인증샷을 덧붙여 아내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카톡을 보내고 나서야 한국 시간을 대충 머리 속에서 셈해보니 새벽 네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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