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LINGTON HOUSE, PICADLILLY RD., LONDON, UK

2013. 4.

 

 

4년간 영국 주재원 생활을 마무리하며 그 동안 내게 의미 있었던 런던의 여러 장소를 다시 찾아가 보았는데 그 중 런던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이 입주해있는 건물, 벌링턴 하우스(Burlington House)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침 내가 왕립미술원을 방문했을 때 20세기 초에 활동한 미국 화가 조지 벨로스(George Bellows)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조지 벨로스라는 화가의 이름은 익히 있었지만 ‘미국 회화 작품 중에 볼 게 뭐 있나’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에 관람 티켓을 구매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왕립미술원에서 구매한 티켓이라는 기념품을 남기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서 뜻하지 않게 조지 벨로스 작품들을 관람하게 된 것이다. 예상대로 전시 작품 대부분은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으나 권투 선수 둘이 링 위에서 치열하게 격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담은, “Stag at Sharkey’s”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 앞에서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때 내 머리 속에 오래된 옛 노래, “더 박서”(The Boxer)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권투는 사람을 때리고 또 맞으며 승부를 가리는 경기다. 누구는 좋아서 때리고 또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누구는 그저 사람 때리는 것이 좋아, 그 끝에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이 좋아 권투를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얻어 맞는 것은 고통스럽고 그러기에 누구를 때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게 사람이다. 아니 그래야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다하는 사람을 때리고 또 얻어 맞는 일, 그럼에도 춥고 배 고파서 권투선수가 되었다는 소설 같은 실화가 존재하는 것이며 더 박서(The Boxer)야 말로 그 춥고 배 고프고 그리고 외로운 권투 선수의 사연을 아름다운 선율로 담아낸 곡이며, 조지 벨로스의 권투 선수 그림 앞에서 나는 사이몬과 가펑클이 부른 옛 노래 , “더 박서”(The Boxer)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와 옛 사진을 앞에 두고 더 박서를 들으며 내 눈꼬리가 살짝 젖고만 까닭은 아름다운 멜로디에 실린, “이제 그만 두고 싶어, 이제 그만 두고 싶어”라면서도 권투 선수는 계속 링 위에 서 있다는(… "I am leaving, I am leaving", but the fighter still remains …) 그 노랫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제 그만 두고 싶어, 이제 그만 두고 싶어”라면서도 권투 선수는 계속 링 위에 서 있다는 가사, 그리고, 어릴 때는 그저 경쾌한 후렴구로 들리던 ‘랄 라 라이…’가 조지 벨로스의 작품 앞에서 모두 다 거짓말이더라는, ‘la la lie’라는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지 벨로스의 작품 앞에서 옛 노래에 대한 기억과 함께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까닭은 아마 나 역시 그렇게 세상 풍파에 실컷 얻어맞으면서 들어버린 내 나이에 대한 소회 때문이었으리라. 어릴 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명작이요 듣고 보니 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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