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2.

 

겨울철 자전거 타기의 최대 난관은 추위다. 자전거 안장 위에서 경험하는 추위는 일상 생활 중 경험하게 되는 추위와는 또다른 차원의 난관이고 그 중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발이 너무 시렵다는 것이다. 십년 째 쓰고 있는 은갈치색 시마노 자전거 신발을 가지고 있는데 이 신발은 흔히 싸이클이라 하는 로드 바이크(road bike)에도, 산악 자전거(mountain bike)에도 어울리는, 이제 단종된 나름 간지나고 좋은 아이템이지만 겨울철 자전거 타기에는 아무래도 발이 너무 시려 무리다. 이 겨울에는 자전거 타기에 가죽 질감을 그대로 살린 목이 긴 오클리(Oakley) 택티컬 부츠(tactical boots)가 제격인데 문제는 이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타자니 자전거 기름 때로 신발이 금방 더러워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발을 덮는 각반이 아쉬웠고 비슷한 기능을 하는 흔히 스패츠(spats)로 오용되는 등산용 각반(gaiter)를 검색해봤는데 눈에 드는 물건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 아닌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구제(舊制) 스위스 자전거 군대용 각반을 발견했고 물건을 소개하는 이미지들이 꽤 그럴 듯 해서 주저없이 그 물건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뭔 만행인가? 이틀 뒤 택배로 받아 든 스위스 각반은 내가 이러려고 인터넷 쇼핑을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지독한 가죽 곰팡내에다 연결부위 리벳에는 퍼런 녹이 슬어 있었고 가죽 표면 위에는 마른 버짐 같은 곰팡이로 가득했다. 반품 하나? 귀찮으니 그냥 이걸 쓰레기 봉지에 던져 버리나? 온갖 갈등을 때리다가 어차피 구제인줄 알고 산 물건 아닌가? 그래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구두약과 구두솔, 헤진 치솔을 가져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니 어느새 이 쓰레기 같은 각반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 어느새 세상 어느 곳에서도 얻기 힘든 그야말로 득템이라 할 멋진 가죽 각반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두툼한 통가죽의 질감, 이제는 벨크로가 대신해버린 단단한 가죽 버클이 주는 클래식한 느낌, 이야말로 내가 진정 찾아왔던 통가죽 각반의 지존 그 자체가 아닌가 했다. 각반을 손질한 후 위쪽 모서리에 가죽이 하도 두터워 음각으로 새김 된 명문을 읽으니 196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제조한 물건이라 표시되어 있었다. 물건을 제대로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가죽 곰팡내를 맡으며 확인한 순간이었다. 예상대로 이 각반을 차고 나서는 겨울 라이딩, 간지 지대로고 이 각반 때문에 올 겨울 라이딩이 한층 즐거울 것 같다. 다만 퇴역 후 폐기물 취급을 받으며 먼 극동의 한국까지 날아와 이 엄동의 추위에 내 발을 감싸고 있는 각반의 가죽 냄새만은 아직까지 페브리즈로 해결을 못한 상황이라 이 잡문을 읽으시는 누군가 해법을 댓글로 남기 주십사 하는 기대가 크다. 참고로 군대의 기동수단으로 자전거가 등장한 것은 자전거가 대중화 된 19세기 말부터 라고 하며 유럽은 물론 미국 군대까지 자전거 군대를 운용했다 한다. 다만 현대적인 군대 기동 수단으로 자전거의 약점이 엄연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전거 부대가 사라졌는데 영세 중립국으로, 그러나 고슴도치 전략으로 전 국민 개병제를 택하고 있는 스위스에서 만큼은 최근까지 자전거 부대를 운영했다 하며 핀란드는 아직까지도 자전거와 스키를 이용한 군대의 기동훈련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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