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후배 직원이 내게 선물한 책 『1913년 세기의 여름』을 요즘에야 읽고 있다. 책 속에서 그리는 유럽, 독일과 체코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1913년이 아름다웠다 하기보다 직장 선후배끼리 책을 선물하고 책을 선물 받았던 그 여름이 아름다웠다 생각한다. 책에는 스탈린과 히틀러, 트로츠키의 이름이 등장하고 프로이드와 융, 토마스 만의 이름이 등장하며 그보다 더 많은 알지 못하는 유럽인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릴케와 카프카의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질 때는 페이지를 대충 넘기게 되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키르히너와 프란츠 마르크, 마르셀 뒤샹, 클림트와 쉴레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대목은 흥미진진하다. 현대 회화의 시초라 할 추상회화의 대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에 이르러서는 책 읽기를 멈추고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까지 해본다. 그런데 칸딘스키보다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unter)라는 이름이 흥미롭다.
Self-portrait in front of an Easel, Gabriele Münter, private collection
가브리엘레 뮌터는 1877년 독일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소개되어 있다. 영문 위키사전을 읽으니 상당한 재산을 상속받아 평생 여행 다니고 돈도 안 되는 당시로서는 아방가르드 미술에 천작하며 살았다고 전한다. 1897년 뒤셀도르프에서 그림 개인교습을 받았는데 이 또한 처음에는 돈많은 상속녀의 여가와 교양 활동 정도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1901년에 러시아 출신 화가인 칸딘스키가 설립한 독일 뮌헨의 팔랑크스(Phalanx)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거기서 가브리엘레 뮌터는 칸딘스키로부터 미술을 제대로 배웠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전위 예술가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두 남녀는 연인이 되었다. 1908년 뮌터는 독일 바이에른 지방 무르나우(Murnau)에 집을 얻어 칸딘스키와 동거를 시작했고 이 집은 당시 뮌헨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1911년에는 칸딘스키와 함께 전위미술가 그룹으로 멋진 이름을 가진 “청기사”(Der Blaue Reither)파를 창립했다. 청기사파는 만 4년의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뿐 아니라 현대미술사에 차지하는 위상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한다. 『1913년 세기의 여름』이 그리는 그 이듬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청기사파는 자연 해산되었다. 독일의 적성국가 출신인 러시아인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 러시아로 돌아갔고 독일인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와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는 독일 군대에 입대하여 전사했다. 그리고 남겨진 여인, 가브리엘레 뮌터는 무르나우를 지키며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965년 사망했다. 가브리엘레 뮌터를 소개하는 지식사전에 따르면 칸딘스키와 뮌터가 서로 결혼을 약속하였지만 칸딘스키는 끝내 약속을 저버리고 1917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장군의 딸과 결혼하였다고 전한다. 『1913년 세기의 여름』에는 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불가피하게 헤어지기 전에 이미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넌지시 내비치고 있었다. 1913년에 일어난 남녀 간의 일을 이제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Breakfast of the Birds, Gabriele Münter,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Washington D.C.
지식사전의 표현에 따르면 무르나우에 “남겨진” - 유럽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영민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대체 누구에 의해 남겨졌단 말인가? - 뮌터는 작품 활동을 계속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한 번 더 겪었다. 그 사이 퇴폐 미술이라고 독일 나치에 의해 낙인찍힌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들을 지켜낸 뮌터는 그 작품들과 자신의 그림을 뮌헨 렌바흐하우스시립미술관(Lehnbachhaus Stadtische Galerie)에 기증하고 1962년 85살의 나이로 무르나우에서 생을 마감했다.
왜 칸딘스키는 뮌터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왜 뭔터는 여생을 독신으로 살았을까? 지식사전이 시사하는 애절한 로맨스보다 나는 『1913년 세기의 여름』 이후 뭔터의 작품이 더 흥미롭다. 『1913년 세기의 여름』 이후 칸딘스키가 강렬한 그러나 엄연한 구상의 영역에 속하는 이전 독일 표현주의 회화와 완전히 결별하고 미술에 있어 추상의 영역을 열은 후에도 뮌터는 무르나우에 '남아' 여전히 맑고 상징적인 색채와 대담하고 단순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독일 표현주의 회화의 전통에 충실한 작품들을 남겼다. 한 시대의 시작을 또 그 끝을 두부처럼 자를 수 없듯 칸딘스키와 뮌터 그리고 우리들의 삶도 그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