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he Morisot │ Portrait of a Woman│ The Courtald Gallery, London

베르트 모리조│여인의 초상화│1872년경│런던 코톨드갤러리

Berthe Morisot │ Portrait of a Woman│ The Courtald Gallery, London

 2013. 4. 23.

 

런던 코톨드갤러리(Courtauld Gallery, London)에서 다소곳이 앉은 여인의 초상화 한 점을 보았을 때 그것이 누구 작품인지 또 누구를 담은 것인지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코톨드갤러리는 마네에서부터 드가, 고흐, 고갱, 로트렉 그리고 세잔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인상파 화가 작품의 보고라서 그 작품들을 감상하기에도 벅찬 느낌이었을 뿐 더러 그간 유럽 미술관에서 수 많은 초상화들을 보아온 때문인지 초상화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초상화는 누가 봐도 품위 있고 아름다운 여인을 담고 있었던 데다 특히 작품 프레임이 요즘 아이들 표현대로 고급지다는 느낌이 들어 사진으로 얼른 담고 다음 전시실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난 사진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이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가 누구 작품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베르트 모르조(Berthe Morisot)의 작품이고 작품 속의 여인이 그녀의 언니, 에드마 모리조(Edma Morisot)로 추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 생활 중 담아온 사진들을 보면 언제나 조금은 아쉬운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 역시 좋아하는 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건성으로 지나쳐 버렸던 것이다. 사진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으면 더 아쉬울 뻔 했다. 코톨드갤러리는 관람객의 사진 촬영을 제한하지 않았다.

 

에드마 그리고 베르트 모리조 자매는 부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모리조 자매는 그림에 재능을 보였는데 자매의 외가 쪽으로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대가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를 선조로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집안 내력이었을 것이다. 부르조아 가문의 딸로서 익혀야할 교양 수업으로 자매는 함께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둘 다 처음에는 직업화가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당시에는 직업화가란 여자가 할 일이 못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베르트 모리조는 화가로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어 당시 관전 격이었던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몇 차례 입선하는 등 화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나갔을 뿐 아니라 전위 예술 그룹이었던 인상파 운동에 참여하는 등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집안끼리 잘 아는 사이였을 뿐 아니라 화가로서 선배임을 자처했고 후대 평가 역시 인상파의 우두머리 취급을 받는 에두아르 마네가 겨우 사망 몇 해 전에야 살롱전에 입선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대 인지도 측면에서는 오히려 베르트 모리조가 더 유명한 화가였을 것이다.

 

같이 미술을 배웠던 언니 에드마 모리조는 다른 선택을 했다. 기록에 따르면 화가로서 에드마 역시 베르트 모리조 못지 않은 재능을 보였지만 에드마는 프랑스 해군 장교와 결혼을 해서 파리를 떠나 남편의 임지인 영불해협이 면한 프랑스 북부 항구 도시 세르부르(Cherbourg)로 떠났다. 영화와 뮤지컬로 유명한 "쉘부르의 우산"의 배경이 되는 그곳이다. 에드마는 결혼과 출산으로 화가로서의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친동생이자 같이 미술을 공부했고 누구보다 서로 마음이 통했던 베르트와 편지로 동생에 대한 그리움, 화가로서의 경력을 이어가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담은 심정을 주고받았다. 런던 코톨드갤러리에 걸려 내 카메라의 담긴 초상화는 이렇게 베르트 모르조가 언니 에드마 모르조를 담은 초상화로 알려진 작품이었던 것이다. 평생 인상파 미술의 선봉에 서 있던 베르트 모리조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초상파는 전통적인 기법에 충실하게 인물의 디테일을 잘 옮겨놓고 있어 화가로서 베르트 모리조의 기본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기본기가 중요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던가? 다만 처음 볼 때 얼핏 느꼈던 인상 그리고 사진으로 다시 열어본 지금도 마찬가지로 초상화 속 인물에 담긴 그늘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이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인 것은 확실하지만 초상화 속 인물이 언니 에드마 모리조라는 확증은 없어서 코톨드갤러리에 걸린 작품 제목은 「어느 여인의 초상화」로 남게 되었다. 작품의 제작 년도는 1872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때는 이미 에드마가 결혼해서 파리를 떠나있었을 뿐더러 두 자매가 멀리 떨어져 있었던 만큼 베르트가 언니를 모델로 앉히고 초상화를 완성시킬 만큼의 시간을 함께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다른 증거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초상화는 베르트 모리조의 자화상이라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서로 닮았던 자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작품 제목이 어떻건 여전히 사람들은 이 작품을 베르트 모리조의 언니 에드마 모리조의 초상화로 믿고 있다. 나도 사진으로 담은 이 멋진 초상화를 에드마 모리조의 초상화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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