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소머싯 하우스와 코톨트 캘러리
The Courtauld Gallery, Somerset House, Strand, London, UK
2012. 4. 19.
거기 카라바조가 있었고 루벤스는 한 방을 가득 차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마네가 있었고 모네가 있었고 로트렉이 있었다. 빼놓을 수 없는 모리조도 거기 있었다. 스스로 귀를 자른 고흐가 있었고 그 고흐의 귀를 자르게 만들었다는 고갱이 있었다. 르느와르도 명함을 내밀었고 이에 질세라 시슬레도 피사로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 드가가 없었다면 섭했을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쇠라가 있었고 세잔이 그 반짝이는 대머리를 빛내며 떡 하니 버티고 있었고 루소와 두피가 있었고 칸단스키도 있었고 피카소도 소품 한 점으로 그 이름을 올렸고 몬드리안까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모딜리아니의 여인 잔느와 로트렉의 여인 잔 아브릴은 외출을 나가고 없었지만 거기 부댕의 하늘이 있어 괜찮았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다. 한때 그 말에 무척 끌렸었는데 글쎄, 지금은 그 말이 맞다 못하겠다. 그림을 읽으려고 애를 쓸 때 게발새발 갈겨 놓은 내 잡문들을 지금 읽어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도 어색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촌스러운 폼을 지대로 잡은 철없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이니 쪽팔려도 어쩌랴, 이제는 하라 해도 할 수 없고 쓰라 해도 쓸 수 없으니 아련할 밖에 없다. 그림은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는 것이 맞다. 유머와 인간적인 매력이 철철 넘쳤던 프랑스 신사 마네, 그는 근대미술사에 한 획을 아주 굵직하게 그어놓은 천부적인 재능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평생 매독으로 고생하다가 쉰 하나 한창의 나이에 죽었다. 마네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대작, 폴리베르제르의 바가 거기 있었다. 그림 속, 바의 여급 쉬종의 표정 앞에서, 그 표정이 마치 어제 저녁에 마감된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 그림 앞에서 오래도록 멈추어 서 있었다.
코톨드갤러리(The Courtauld Gallery)은 1932년에 섬유산업으로 돈을 많이 번 영국 사업가 세멸 코톨드(Samuel Courtauld)가 사 모은 개인 소장품들을 세상 밖으로 내놓으면서 설립된 사설 미술관이다. 현재는 소머싯 하우스(Somerset House)라는 18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런던의 유서 깊은 석조 건물에 입주해 있는데 미술관의 설립과 함께 미술사를 전문으로 가르치고 또 연구하는 단과대학(Courtauld Institute of Art)이 함께 설립되었고 이 단과대학은 현재 런던대학교(University of London)에 속해 있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는 내내 한 개인이 사 모은 미술 작품들이 어쩌면 이토록 다양하고 수준 높은 명작들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인지 감탄을 금할 길 없었다. 최소한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 작품들만 보자면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뒤지지 않는다 할 수 있겠다. 코톨드갤러리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런던 중심가에 있어서 접근성도 무척 좋은 편이므로 런던을 찾은 분이라면, 그리고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욱 찾아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