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베르나르 "속죄제에 참가한 브르타뉴 지방의 여인들" 복제화
2018. 9.
after
Emile Bernard "Breton Women Attending a Pardon" 1888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유럽에서 유행한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 화가로 분류되는 에밀 베르나르(Émile Henri Bernard)의 그림 하나를 크레파스로 베껴 그려보았다. 베르나르는 고흐(Vincent van Gogh)와 고갱(Paul Gauguin), 로르텍(Henri Toulouse-Lautrec)의 친구로 유명하고 나중에는 세잔(Paul Cézanne) 교유하며 그로부터 회화관을 들은 뒤에 이를 책으로 출간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화가이다. 베르나르는 특히 고갱의 화풍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갱은 유명해진 뒤에 정작 베르나르의 영향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훗날 베르나르가 이에 대해 상당히 분개했더라는 소개도 위키사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편한 세상이라 인터넷을 통해 두 사람의 작품을 검색하여 비교해보니 그 영향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베르나르로서는 상당히 불쾌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원조인지 따로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베르나르의 초기 작품들만 보면 그가 고흐나 고갱 같은 신인상주의 유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1868년생으로 1941년까지 꽤 장수한 그의 말년 이력을 보면 젊은 시절 개척한 당시로는 전위적 미술 활동을 싹 접어버리고 고전미술에 천착했다고 한다. 원조 다툼에 열을 받아 정나미가 다 떨어져버린 것일까?
베르나르는 1886년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퐁타방(Pont-Aven)에서 고갱과 함께 작품 활동을 했는데 그 당시 작품들을 보면 이것이 고갱의 것인지 베르나르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닮아 있으며 그 중 「속죄제에 참가한 브르타뉴 지방의 여인들」(Breton Women Attending a Pardon)이라는 작품이 내 눈에 들었다. 브르타뉴 지방은 16세기 무렵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지만 로마제국 이전 영국을 포함하여 오늘날 유럽 북서부 지역에 정착해 살던 선주민인 켈트족(celtic)의 일파가 인구의 주류를 이루는 곳으로 프랑스어와는 다른 브르타뉴 고유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는 문화적으로 프랑스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곳으로 플랑드르 지방에 속하는 프랑스 북동부 릴(Lille) 출신의 베르나르는 이곳의 독특한 문화와 풍경이 퍽 인상 깊었던지 브르타뉴 지방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을 담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당시 인상주의 혹은 인상파 화가로 분류되는 유명화가들이 브르타뉴 지방의 풍경과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는데 심지어 고흐는 베르나르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 그린 모작을 그리기도 했고 이 모작은 베르나르의 원작보다 훨씬 유명하고 또 비쌀 것이다. 이제 크레파스로 그린 나의 베낀 그림을 걸 차례인데 색칠을 하며 브르타뉴의 산은 왜 분홍색일까 싶어서 위키사전에서 브르타뉴 지방을 검색해보니 분홍빛을 띠는 산들의 사진이 올라 있었다. 영국 살 때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서쪽 끝 몽생미셸(Le Mont-Saint-Michel)까지 가봤는데 영국에서 프랑스 서쪽까지 그야말로 하루 종일 운전만 했던 고생스러운 기억이 남아있다. 오늘 밤 내 손가락에 손바닥에 덕지덕지 묻은 크레파스 색깔처럼 못 그린 습작을 완성해놓고 보니 노르망디 너머 브르타뉴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