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이 거수경례를 할 때 구호는 붙인다. 충성이라는 구호가 일반적이고 해군이나 해병대, 공군에서는 필승이라는 구호를 붙인다. 간혹 특정부대에서는 자기 부대 이름을 구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단결이라는 구호를 붙이는 부대도 있는데, 내 군 생활 중 우리 부대는 거수경례를 할 때 단결이라고 붙였다.
기계적으로 거수경례를 할 때마다 단결이라는 구호를 붙였지만 나는 이 구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분명히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해설하고 풀어내 놓기에 내 군대 생활은 너무도 팍팍했으며, 제대 이후에는 너무도 바빴다. 그 조차도 너무도 오랜 옛일이 되어 버렸지만 오늘 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다가 너무도 간단하고 명료하게 내가 단결이라는 거수 경례 구호를 싫어한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단결이란 늘 어떤 타자(他者)에 대한 배제를 의미한다. '우리'가 단결한다는 것은 두말 것 없이 '남'을 배제할 능력을 보다 더 키운다는 것을 뜻한다.
박노자의 『나를 배반한 역사』 중에서
저자인 박노자(朴露子),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러시아 출신으로 고려대학교에서 수학했고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즉 법적 그는 진정한 한국인이다. 그는 한국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이방인이면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왔으며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저작들을 내어 놓았고 그 중 몇 권을 나도 읽었다. 그러나 그는 연구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이 나라에서 학문적 지평을 넓히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너무 먼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 교수 자리를 얻어 2003년 이 땅을 떠났다.
그가 왜 우리나라를 땅을 떠났을까? 그에 대한 실마리는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그의 저서에도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바로 그 우리의 옹골찬 단결 때문에 결국 그가 이 땅을 떠나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나는 여전히 단결이라는 그 낱말이 좋지 않고 때로 섬뜩하기까지 하다. 200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