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가지고 만든 영화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은 19세기 미국 남북전쟁에 휩싸인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에 얽힌 이야기이다. 대체적으로 큰 전쟁을 다루는 영화들이 역사적 서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콜드 마운틴』은 전쟁에 휘말린 개인의 지난한 삶의 이력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니 사람이 만드는 것이 역사이고 보면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사건이 어디 있으며 또 이를 외면하고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겠는가?

1860년대 미국 남부 처녀 에이다는 대도시 찰스턴에서 건강을 위해 아름다운 시골 마을로 이주한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노스 콜롤라도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 콜드 마운틴에 정착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위고 아버지의 사목 활동에 동반자로 성장한 에이다는 마을의 과묵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꽃미남 인만과 몇 마디 나누어 보지 않고도 문자 그대로 눈이 맞았다. 하지만 남북전쟁의 먹구름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마을 콜드 마운틴을 덮쳐 에이다는 입대하는 인만과 사진 한 장씩 그리고 갑작스런 짧은 순간의 키스만 나누고 전쟁터로 떠난 인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비참한 참화 속에 부대끼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진 인만이 살아야 하는 이유 역시 에이다, 그녀가 준 사진, 한 권의 책, 몇 통의 편지가 전부이다. 전쟁은 총을 쥐고 사선을 넘나드는 군인은 말할 것도 없이 남은 노약자들과 부녀자들에게도 고통이다. 폭풍의 언덕을 읽고 멋지게 피아노를 치며 아름다운 찬양을 부를 줄 아는 에이다는 스스로 먹을 음식조차 차려내지 못한 화원의 꽃이었다. 콜드 마운틴의 산하는 아름답고, 그 농장은 풍요롭지만 밭 갈고 씨 뿌리는 농부에게는 노동의 들판이다. 사람들이 고통 받는 시절에는 고통으로 허약해진 사람들의 상처를 물어뜯어 사욕을 채우려는 악당들이 있게 마련이고 한편으로 이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 일어서려는 의지를 지닌 인간이 있게 마련이니 농부의 딸로 들판의 잡초처럼 자란 루비가 그녀이다.

에이다는 루비로 인하여 아름다운 콜드 마운틴의 농장이 전쟁으로 피폐해져 잡초만 무성한 농장이 되자 그곳이 노동의 들판이라는 것을 알 게 되고 또 노동을 통하여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진 인만을 기다리는 힘을 추스리게 된다. 인만은 인만대로 전쟁은 덧없는 것임을 알았으니 탈영을 불사하고 멀고 힘겨운 여정을 거치며 에이다가 기다리는 콜드마운틴으로 향한다. 이 애정의 화신들의 앞길에 거칠 것은 없었다.

『콜드 마운틴』은 할리웃 시스템이 영화이지만 미국 남북전쟁을 매우 다른 각도에서 그리고 있으니 영화 내용 중 전쟁의 대의나 애국심 고취 따위를 찾을 수 없다. 영화의 세 축 중의 하나는 탈영병 인만이 탈영병 사냥꾼들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이고 인만이 노예제도를 지지한 남군이어서 그랬나 보다 싶지만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링컨의 군대 곧 북군은 아녀자 혼자 사는 시골 농가를 덮쳐 식량을 뺏고 성폭행을 일삼는 것으로 비춰지니 영화는 애초부터 전쟁의 대의 같은 것에 관심이 없으며 영화 속에는 비참한 전쟁의 회오리 속에 살아남아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 군상들이 존재할 따름이다. 특히 『콜드 마운틴』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탈영 군인과 여인의 사랑을 그리고 있음에도 그것을 염세적이거나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사랑이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워나가는 두 남녀를 그리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니 영화 화면에 몰입하다가 이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에 눈꼬리가 스멀스멀 젖어 들어 아무래도 이건 주책이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한 줌조차 되지 않는 추억과 인연의 끈을 사랑이라 믿고 오랜 질곡을 거쳐 하얀 눈 밭 위에서 두 사람이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보고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무덤덤할 수 있겠냐 싶기도 했다. 겨울 나뭇가지마냥 마음이 바싹 말라 버렸지만 나도 목석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비록 원작의 덕이겠으나 이 엄동의 계절에 낭만을 소환한 앤서니 맹겔라(Anthony Minghella)감독의 연출에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낭만이 사라져가는 시대아닌가? 20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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