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주연이고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가 감독을 맡은 영화라고 해서 다른 거 따질 이유가 없다며 『카지노』(CASINO)를 보겠다고 DVD를 골랐을 때는 언뜻 이 영화가 어느 대단한 도박사에 얽힌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영화 파일을 열어보니 갱 영화였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주인공 에이스(Ace)는 타고난 도박꾼이다. 내기가 있는 곳에 그가 있고 그는 늘 이긴다. 마피아들이 그런 그를 스카웃했다. 마피아는 에이스에게 도박 자금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해 조 페시(Joe Pesci)가 연기하는 닉키라는 폭력배를 붙여줬다. 자그만 체구의 닉키는 난폭한 폭력으로 에이스의 신변을 철저히 보호한다. 그런 인연으로 그들은 훌륭한 한 팀을 이루고 에이스는 마피아들에게 충실하게 돈을 벌어줬다. 그러자 마피아의 보스들은 에이스를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까지 경영하게 한다. 에이스는 마피아의 기대대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마피아 보스들에게 충실히 상납한다. 문제는 에이스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를 전전하며 사기도박과 매춘을 일삼는 진저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과 닉키가 라스베가스에 합류하게 되면서부터 생겨난다.
에이스의 말대로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카지노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경찰이 오지 않는 은행을 터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나름의 룰과 메커니즘이 있다. 에이스는 그 룰을 존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닉키는 버릇대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잔인한 폭력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한다. 필연적인 에이스와 닉키의 충돌이 생기고 거기다 에이스와 아내 진저와의 불화 그리고 카지노 주변을 둘러싼 각종 압력단체의 견제로 에이스는 점점 곤궁에 처하고 급기야는 카지노의 경영에 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치밀하고 끈질긴 수사 끝에 카지노를 둘러싼 마피아와의 검은 연계에 대한 고리를 붙잡은 경찰은 에이스의 카지노와 관련된 마피아들에 대해 대대적 검거에 나서고 에이스의 카지노에 돈을 댄 보스들까지 법정에 서게 된다. 법정은 법의 논리로 마피아를 심판하고 보스들은 마피아의 논리로 말썽을 일으킨 똘마니들을 심판한다. 카지노와 마피아와의 관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입들을 봉했다. 위험을 느끼고 잽싸게 도망친 닉키도 결국은 하나의 마피아 똘마니로서 마피아의 심판을 받았다. 마피아 똘마니 역할로 조 페시 보다 더 어울리는 배우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에이스의 돈을 훔쳐 가출한 진저 역시 마약 과용으로 죽었다. 그러나 에이스에 대한 보스들에 대한 심판은 달랐다. 닉키의 소행으로 비춰지는 자동차 폭파 암살 위기를 모면한 에이스는 그 과묵함 때문에, 그것이 비록 마피아의 룰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참여한 게임의 룰에 대한 충실함 때문에 무엇보다도 보스들의 주머니를 채워줄 수 있는 그 능력 때문에 경마 도박사로 살아남았다.
영화 『카지노』는 화려한 도박사의 이야기도 혹은 경쾌한 폭력이 넘치는 갱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 『카지노』에 등장하는 갱들은 뒷골목에서 경쟁 조직과 경찰의 감시에 두려워하는 찌들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영화 내내 식별이 가능한 인물로 등장하지도 않지만 경찰은 늘 다른 배역들의 주위를 서성거리는 영화의 다른 축이다. 보스들 역시 언제나 문제들을 두려워한다. 영화가 그리는 1973년은 미국의 갱들에게 있어 그런 시기였다. 내기 도박으로 경찰의 눈총을 받던 갱들은 믿을만한 에이스를 도박이 합법화되는 곳 라스베이거스로 보내 돈벌이를 계속하려 한다. 법적으로 에이스의 돈은 마피아 두목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데 에이스가 카지노에서 벌어들인 돈은 마피아 두목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 이 모순을 파고드는 경찰의 추적에 마피아는 속수무책이다. 에이스가 경영하던 카지노는 소유주가 바뀌고 마피아들이 운영하던 도박장들도 속속 문을 닫게 되며 그 자리에는 거대 자본을 가진 합법 대기업의 카지노가, 그들이 쌓아 올리는 대형 빌딩들이 들어서고 에이스는 그 와중에 살아남은 에이스는 마피아 두목들의 비호를 받으며 경마도박으로 돈을 번다.
『카지노』는 명불허전 로버트 드 니로, 세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을 잡은 조 페시, 육체파 배우 샤론 스톤 등 그 배역진의 화려함,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아주 잘 만든 영화였다. 이런 모든 것을 갖추고도 우리를 실망시키는 영화도 얼마나 많은가. 2004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그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마침 경쟁 작품을 내놓았으나 수상에는 실패한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에게 헌사를 바치는 장면이 문득 기억에 남아 내가 예전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뭐 봤나, 옛 잡문을 뒤지다가 발견한 옛 글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려 놓는다. 세월 참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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