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남기는 허접 감상평에 영화 줄거리를 자세하게 적어둘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노트북』의 줄거리를 여기에 써두는 이유는 이 영화의 줄거리가 그만큼 싱거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부잣집 딸인 앨리는 어머니 고향인 시골마을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 시부룩(Seabrook)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 한 철을 보내고 거기서 벌목공 청년 노아와 만나 불꽃같은 첫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첫사랑의 여름은 갔고 위험한 첫사랑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앨리의 부모는 그 사랑이 깊고 격렬해져 가는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딸을 데리고 도시로 돌아가 버린다. 휴가지에서 만난 첫사랑에 빠져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딸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갈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앨리가 돌아간 뒤 시골 마을에 남은 노아는 앨리에게 정확히 365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그 편지는 앨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집배원이 도착할 시간이면 어김없이 앨리의 어머니가 편지를 걷어 가버렸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 '왜 편지조차 부치지 않았느냐.'고 노아를 원망하는 앨리는 노아와의 철없는 사랑을 극구 반대하던 어머니가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야말로 철없는 사랑들이었다.
그 사이 앨리는 뉴욕에서 대학을 다녔고 노아는 노가다 공사판을 전전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군에 입대하여 북아프리카, 유럽 전선에 참전했다가 살아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앨리는 뉴욕에서 전시 자원봉사자로 병원에서 일하다 돈 많고 잘 생겼으며 사려 깊은 좋은 남자 론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기 직전이다. 그러나 결혼을 앞둔 앨리는 우연히 첫사랑 노아가 여전히 그 여름의 시골에 살고 있음을 알 게 되어서 시부룩을 다시 찾는다. 참전 용사로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듬직한 청년이 된 노아는 아름다운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하얀 이층집에서 여전히 과묵한 미소를 지으며 앨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세월과 신분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단 이야기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어린 앨리와 노아가 만나 사랑하고 7년간의 곡절을 거쳐 끝내 결혼하는 과정에 담겨 있다. 그리나 세월은 흘러 어김없이 두 청춘 남녀는 노년이 되었는데 영화는 정작 늙어 치매를 앓고 있는 앨리의 곁에서 그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자신조차 내일을 기약할 길이 없는 심장병을 앓으면서도 그들의 사랑이 담긴 '노트북'을 읽어주는 늙은 노아의 변함없는 사랑에서 의미를 찾는다. 아내가 된 앨리에게 1년간 365통의 편지를 보낸 노아는 늙어 치매에 걸려 그 사랑을 깡그리 잊어버린 아내를 위하여 평생을 두고 그들의 사랑을 기록한 노트북을 펼쳐 읽어주는 것이다.
『노트북』은 좋은 영화가 지녀야 할 조건을 다 갖춘 듯 보인다.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에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특히 시대 배경이 된 1940년대의 충실한 고증은 빈티지 룩의 패션쇼 장을 세트로 옮겨 놓은 것 같아 볼거리를 제공한다. 게다가 한적한 미국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은 작품사진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 청춘 남녀의 격렬하고 애잔한 사랑을 비추고 한편으로 평생을 같이 한 노부부의 깊은 사랑을 교차시켜 요즘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고전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이 뻔한 이야기에 진부한 느낌이기는 해도 그래서 『노트북』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고 그 자체로 요즘 영화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겠기에 극장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