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왕은 호남아였고 성군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나 현실적이고 신중하며 과단성 있는 현군이었다. 나라를 위하여 때로 전쟁을 불사했고 때로 내키지 않는 결혼도 불사했다. 그렇게 정략적으로 결혼한 왕비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았으나 왕과 왕비는 서로를 멸시하고 증오했다. 왕비는 구중궁궐의 한 가운데서 공공연하게 자신을 비하하는 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왕에 대한 증오를 키웠고 그 증오의 크기만큼 총명하고 강건하게 자라나는 그녀의 아들에게 집착했다. 아들이 세자가 되어 다음 왕위를 잇고 그날로부터 그녀가 겪었던 그 숱한 수치와 설움을 일거에 보상받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왕비를 학대하는 왕을 보며 자란 왕자는 그러나 점차 성년이 되면서 왕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왕은 미천한 어미에게서 출생한 왕자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왕과 왕자가 아비와 아들로 함께 하는 시간이 잦을수록 왕비는 자신이 겪었던 설움을 아들에게 상기시키고 다짐받아 두려고 조바심 쳤고 왕자의 반대편에 서있던 정적들은 불안했다. 정적들은 왕자가 실은 사생아라고 왕을 부추겼고 왕자는 겁 없이 비열한 정적들에게 대들었다. 술에 취한 왕은 왕자에게 “니 놈이 보위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이 사생아 놈아!”라고 나라의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일갈하고 내쳤다. 왕은 왕자의 그 두려움 없는 용맹함이 거슬렸고 어쩌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핏줄의 갈래가 내포하고 있는 비밀이 어찌 되었건 왕과 왕자는 서로가 천상의 피붙이임을 외면하지 못했고 왕자는 점점 더 굳건하게 성장해갔다.
왕자가 나이 스물 성년이 되자 오히려 정적들에게 기회가 왔다. 자신의 젊은 딸을 왕에게 시집보낸 재상은 새 왕비가 떡두꺼비같은 왕자를 낳자 기고만장했다. 왕은 아직 젊고 자신을 따르는 세력은 강성하니 성년이 된 사생아로 의심받는 왕자는 안중에 없었다. 재상의 세상은 이제 눈앞에 있었고 공공연히 왕자를 모욕했다. 이것은 이십년간 절치부심하며 오직 아들이 다음 왕위를 이어받을 그 날만을 기다리던 왕비의 모든 꿈이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팽팽한 긴장이 이어지던 어느 날 왕은 그를 모시던 시종에게 칼을 맞아 암살 당했다. 한창 나이였다. 시종은 왕을 찌르고 재빨리 달아났으나 그를 잡으려는 호위무사들의 발걸음이 더 빨랐다. 암살자는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추적자들에게 붙잡혀 무자비하게 살해당했다. 암살은 단독 범행이었으니 암살자를 사로잡아 그 배후를 캐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역사의 대부분의 암살이 그러하듯 추적자들은 웬일인지 확인사살까지 해가며 암살자를 현장 근처에서 단번에 죽여 버렸다. 그리고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은 왕의 시신에서 온기조차 채 가시지 전에 스무 살의 왕자는 그 자리에서 왕의 지위를 이어 받았다. 장성한 왕자가 죽은 선왕의 시신 앞에서 왕위를 이어받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정당한 왕위 계승이었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보위를 이어받은 새 왕조차 어미인 왕비를 의심했으나 왕비를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고 죽은 자들은 말이 없었다. 젊은 딸을 선대왕에게 내어놓은 재상이 즉각 제거되었음은 물론 새 왕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왕비는 이제 막 첫 돌이 된 선대왕의 어린 핏줄과 아이의 모친까지 죽여 버렸다.
조선왕조실록 이야기가 아니다. 선왕 필립포스 2세(Philip II)에 이어 기원전 336년 왕위에 오른 마케도니아의 정복왕 알렉산더(Alexandros) 이야기이다. 알렉산더는 즉위 후 2년간의 모국에서 원대한 원정의 배후를 다지고 기원전 334년에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동방 원정길에 올랐다. 원정의 기초가 되는 강력한 군사력은 선왕이 이미 다져놓았다. 당시 강력한 세계 제국 페르시아로 단숨에 달려 들어가 페르시아 군을 격파했고 연이어 이집트, 시리아를 정복하고 내친 김에 이란 동부를 지나 인도대륙까지 진출했다. 그의 정복욕은 끊임이 없었으나 장거리 원정에 지친 군대의 사기는 떨어져 결국 10년간의 원정을 중단하고 그가 이룩한 제국의 중심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이었던 수사로 귀환하여 그가 이룩한 대제국을 제국을 통치했다. 그는 다음 해인 기원전 323년에 서른셋 나이로 열병으로 사망했다. 신화가 되어버린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과 그가 이룬 제국 때문에 동서의 교통로가 열리고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모두가 세계의 시민이라는 세계 시민주의 사상이 퍼졌나가게 되었다고 서구의 역사는 평가한다. 그리하여 알렉산더의 원정은 서구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켜 오늘날 서구 문명의 정신적 물질적 근간의 한 지주를 이루는 헬레니즘(Hellenism) 문화가 탄생하였다고 오늘날의 서구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훗날 헬레니즘 문화는 로마인에게 수용되고 중세에는 서유럽 여러 나라에 계승되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왕실의 암투극과 위대한 동방 원정이라는 이 극적인 요소들을 어찌 신화가, 연극이, 미술이 그리고 영화가 외면하겠는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알렉산더가 이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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