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iots of Fire ­ Main Theme ­ Vangelis

 

오래 전 명절 특집영화였던지 아니면 주말의 명화였던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TV에서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1)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이 영화가 스포츠 영화의 고전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고 특히 반젤레스(Vangelis)라는 뉴에이지 음악가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배경으로 상하 흰색 운동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스포츠 영화의 명장면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화가 소재가 된 『불의 전차』는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 남자 육상 단거리에 영국대표로 출전하게 되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1919년 해롤드 에이브리엄(Harold M. Abrahams)이라는 유대인 청년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했다. 신분제사회의 잔재가 엄연했던 당시 영국에서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이 영국 최고의 명문대학에 각고의 노력 끝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지 에이브리엄은 학교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단거리 달리기 시합에서 발군의 역량을 과시하며 무려 700년 동안 깨지지 않던 기록 즉 캠퍼스의 시계탑이 정오를 알리는 12번의 타종을 할 동안 캠퍼스의 일정 거리를 돌아오는 달리기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한다. 영화는 내내 이 청년의 치열한 승부욕을 집념으로 표현하지만 원래 집념과 아집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인 법이다. 나는 그것을 아집으로 이해하고 영화를 보던 기억이 새롭다. 게다가 그가 유태인이라니 무슨 부언이 더 필요할까.

한편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아마 장로교회 선교사였으며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불리던 에릭 리들(Eric Liddel)은 육상을 통한 선교의 길을 걷고자 달리는 사나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이름을 떨치던 휴 허드슨(Hugh Hudson)의 최초 극영화라는 『불의 전차』는 이 두 젊은이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기 위한 도전과 고뇌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젊은이 모두 영국 단거리 육상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파리 올림픽행 배에 승선하게 되지만 마침 올림픽 출전일이 기독교 안식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리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출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등의 곡절을 거치게 되지만 여러 갈등들이 전개되고 또 봉합되면서 휴먼 드라마답게 올림픽 출전의 영광과 메달 획득의 영광 그리고 인간 승리의 영광을 획득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는 1982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음악상, 의상상 그리고 각본상까지 끌어안는 영광을 안았다.

 


 

금요일 밤사이 음주가무에 지친 몸을 주말 한 낮까지 이어진 수면으로 달래고 늦잠에서 깨어나 우연히 텔레비전으로 시청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경기가 남자 수영 400m 계주였다. 현재 세계 남자수영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미국과 호주의 접전이 볼거리라는 해설자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선에 오른 여덟 개 팀 중에 금메달을 차지한 팀은 그 유명한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오래도록 올림픽 출전이 금지되다 흑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국제무대에 모습을 나타낸 남아프리카공화국팀이었다. 게다가 해설자의 호들갑이 쑥스럽게도 2위 팀은 네델란드팀이었고 미국이 겨우 3위를 차지하여 체면치레를 했다.

그런데 한 팀에 네 명씩 여덟 팀이 출전했으니 도합 스물 네 명이 벌인 경기였음에도 출전자의 면면을 가만히 살펴보니 유색인종이 단 한명도 없었고 스물네 명 모두 건장한 백인 청년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금메달을 획득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전 선수들이 소개될 때 혹시나 해서 유심히 살펴보았건만 그들 역시 네 명 모두 백인 청년이었으니 그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성스러운 올림픽 무대에서 얻어맞고 상처입고 피 흘리며 분투하는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들이 가득한 각종 격투기 경기장 장면들이 싸악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남자 수영 400m 계주에 출전한 국가들의 면면을 순위대로 꼽아보니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호주, 프랑스, 독일 순이다. 수영 경기장에서 그리고 격투기가 벌어지는 링과 매트 위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그들끼리의 올림픽이었다.

1924년 하계 올림픽에 영국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한 유태계 영국청년 해롤드 에이브리엄이 달리기를 통해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어떤 댓글 평에는 부당한 유태인에 대한 영국 상류사회의 편견에 맞선 행위라고 되어있던데 유태인 그릇된 행동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너무 많고 이웃과 타협하고 화해하고 공생할 줄 모르는 유태인들의 삐뚤어진 행동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가 곧잘 외신을 통해 전해 듣는 뉴스이지 않는가? 다음으로 같이 1924년 하계 올림픽에 영국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한 에릭 리들이 달리기로 증명하고자 했던 것인 무엇일까? 누구인가의 영화평처럼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통해 그의 사랑을 만천하에 전하기 위해'서일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한 또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가르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달리기 능력을 올릭픽 경기에서 증명해 보여야만 그가 가진 신앙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만천하에 전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올림픽은 인종적이고 정치적이고 또한 종교적이다. 이 올림픽 무대에서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 즈음에 위치해있는가.

그래도 남자로 이 땅에 태어나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했는데 이렇게 큰일을 하게 되서 다행이라는 씩씩한 우리 유도 금메달리스트의 우승 소감이 자랑스럽고 우세한 가운데 종료 11초를 남기고 작업에 들어가는 그의 진짜 선수다움이 멋지고 승리 뒤에 가장 먼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의 신실함이 부럽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거실 바닥에 반쯤 드러누워 올림픽 방송을 보면서 말도 되도 않은 잡념 속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던 내 생각은 또 어디에 위치해있는가? 2004 Hani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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