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2009 HUP
많이 알고 싶은데 잘 외워지지 않는 것이 나무 이름이다. 물푸레나무, 상수리나무, 참나무, 벚나무, 너도밤나무 등은 공원이나 가로수로 주변에 흔한 나무인데 명찰이라도 붙어 있으면 그때뿐이지 돌아서면 그 이름을 잊고 만다. 더러 나뭇잎 모양을 보고 그 수종을 가릴 수도 있는데 그것조차 요즘처럼 헐벗은 나목 아래에서는 이 나무가 그 나무였는지 그 나무가 이 나무였는지 싶다. 꽃 떨어지고 잎사귀까지 떨어진 벚나무를 알아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난 해 봄 마카우에서 유명한 유적지인 성 바오로 성당을 구경했다. 성당 앞에 얼핏 보아 수령이 오래되었지 싶은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그 큰 나무의 가지 가지마다 붉은 꽃이 만발해서 묘한 감정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동행한 가이드에게 그 나무의 이름을 물어 보았더니 그 역시 어색한 미소를 흘릴 뿐 나무의 이름을 알지 못해서 나무 이름 외우기는 나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했다. 잔가지 끝마다 매달린 붉은 꽃은 습한 대기 속에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마치 선운사 동백꽃 떨어지듯 후두득 후두득 떨어지고 있었다. 옛 선인들은 늘 푸른 소나무를 선비의 곧은 기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치고 그 소나무의 늘 푸르름을 찬양하는 시가를 짓기도 했고 추사 김정희는 그 소나무에 빗대어 세한도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지만 그것은 절개 곧은 선비님네 이야기일 것이고 나와 같은 세파에 찌든 필부는 봄이 오면 새 순을 내어 놓고 여름이면 짙은 잎사귀를 뙤약볕 아래 내어 놓고 가을 소슬 바람에 지는 낙엽을 내어 놓고 겨울이면 칼 바람에 헐벗은 채 떨고 선 나무 같은 나무가 좋다.
은행나무와 소나무를 빼고 내가 그 이름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나무가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늘 푸르지 않지만 늘 열린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서 좋고 그 회백색 줄기는 매끈한 처녀의 아랫배와 닮아 좋고 그 줄기 마디마디 사이에 걸친 옹이 자국은 처녀의 배꼽 같아 좋다. 뿐만 아니라 어느 볕 좋고 바람 좋은 날 자작나무 아래 서서 나무의 꼭대기를 쳐다보니 자작나무 잎들이 마치 수 천 개의 손거울이 된 것처럼 눈부시게 햇살을 반사하는 것을 쳐다본 놀라운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자작나무는 늘 무리를 이루어 자라는 것 같지만 조금 떨어져서 자작나무 숲을 보면 자작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규칙적인 간격을 유지하면서 자기 혼자만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리를 이루면서도 엄격한 개별성을 잃지 않는 그런 자작나무가 좋다.
오늘 점심을 식사 후 한국 전통의 숲을 재현했다는 여의도 공원 길을 걷다가 잘 생긴 소나무 군락이 있어 거기에 내가 원하는 작은 토담집 하나를 얹어 놓은 장면을 그려보았는데 한국 전통의 숲을 지나 자작나무 몇 그루가 가을 바람에 아낌없이 마른 잎들을 내어주며 조용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닥터 지바고 였던지 안나 카레리나 였던지 어느 영화에서 자작나무 숲이 끝도 없이 이어진 시베리아의 타이가를 본 기억이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끝도 없이 자작나무 숲으로 열린 시베리아 타이가를 횡단해 보겠는가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점심 시간이 다 가고 있어 사무실로 돌아가는 걸음을 서둘렀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