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메종 드 히미코』(La maison de Himiko), 제목이 근사해서 꼭 보려고 점 찍어둔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 정보를 얻으려고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게이에 대한 영화라 해서 꺼림칙한 기분이 되어 제법 오랫동안 영화 파일을 폴더 한 켠에 묻어 둔 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어제 늦은 밤 무료함을 달래려고 잠깐 열어나 보자 싶은 심정으로 보게된 영화가 『...히미코』였다. 근사한 분위기의 제목과 포스터가 아니었으면 간단하게 지워버렸을 것이다. 게이를 소재로 다룬 꽤 이름이 알려진 영화를 나는 제법 알고 있었지만 그 영화들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 심리를 점잖게 설명할 방법을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극중의 사오리가 게이 양로원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짙은 화장을 하고 앉아 있는 할망구 게이를 보고는 기겁을 해서는 아르바이트고 뭐고 다 집어 치우겠다며 뛰쳐나가려는 심리, 그것과 꼭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는 직장도 처 자식도 다 내 팽개치고 사라졌는데 그가 숨어든 곳은 게이 바였고 그 게이 바에서 유명한 마담이 되었다. 내 팽개쳐진 모녀는 모진 고생을 했고 그 고생 끝에 엄마는 병을 얻어 숨을 거두었으며 병 구완에 진 빚은 모조리 남은 딸 사오리의 몫이 되었다. 조그만 페인트 도장 회사의 경리로 일하는 사오리는 빚에 허덕이다 아르바이트로 유흥업소에 일할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이런 그녀 앞에 나타난 사람은 사라진 아버지의 애인, 엉덩이에 짝 달라붙은 백 쫄바지를 즐겨 입는 젊고 멋진 남자 하루히코였다. 하루히코는 사오리에게 그녀의 아버지 히미코가 게이 바를 하며 모은 돈으로 메종 드 히미코라는 이름의 게이 실버 타운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 아버지가 병으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아르바이트로 일주일에 한번씩 그 아버지의 간병과 실버 타운의 잡일을 해주되 상당한 급료를 주겠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간병을 하다보면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 유산을 물려 받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 모녀를 버린 아버지를 증오하는 심정을 두말할 나위도 없을 테지만 엄마의 간병이 남긴 빚과 조그만 회사의 경리 월급에 쪼들리는 사오리는 유산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메종 드 히미코를 찾기로 한다. 그렇게 처자식과 인연을 끊어버린 아버지가 대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바닷가의 아름다운 저택, 게이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 그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아버지 히미코와 각각 다른 사연을 가지고 메종 드 히미코에 흘러든 사람들.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으로 거리를 두던 사오리는 점차 그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모습과 그 이면에 숨은 깊은 외로움과 고민을 접하게 되면서 마음을 열게 된다.
살다 보면 의지나 노력만으로 안되는 것들이 많다. 동성애라는 감정이 사람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멈출 수 없다는 점도 익히 알고 있었다. 스스로 불가항력인 본성을 숨기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고 하물며 커밍 아웃의 결과가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얼마나 힘들게 무엇인지 짐작할 수도 있다. 다만 사오리가 메종 드 히미코에서 게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과 병들어 죽은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 히미코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사오리가 홧김에 그들, 그 게이들에게 일갈한 '지겨워, 그 이기주의'란 말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게이란 것은 내게 영화를 보기 전에도, 보고 난 후에도 타인의 취향일 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오리의 일갈은 영화 속의 게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게이를 바라보는 나를 향해 내뱉는 소리 같기도 하다. 대머리가 훌러덩까진 여장 할망구 게이 루비, 결국 거품을 물고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말았는데 그가 사오리에게 던진 대사 한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너 그렇게 인상 쓰면 늙은 게이보다 더 추하게 된다구.' 게이도 늙고, 병들고 또 죽는다. 그때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가엽고 불쌍한 처지가 될 것이다. 자신이 게이임을 자각하는 순간, 그리고 고백하는 순간에 그들은 세상을 등져야하므로.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근(根)이었던지 식(植)이었던지 잘 기억 나지 않는 돌림 자를 쓰던 형제가 이웃에 살고 있었고 그 동생이 나와 어울려 놀던 친구였다. 그 친구 위로 중학교에 다니던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바지 위에 보자기따위를 두른 채 여자 아이들과 고무줄 놀이를 즐기던 형이었다. 그들 형제의 이름은 잊었지만 우리 또래는 그 형을 명월이로 불렀음을 기억하고 있으며 또 명월이가 앉아서 오줌을 누더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형제의 어머니가 남 몰래 눈물을 흘렸던가 알지 못한다. 메종 드 히미코의 게이들은 일년에 한번씩 창가를 부른다. 그들을 키우며 눈물 마를 날 없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를 부른다. 2009
드보르작 가곡집
『일곱 개 집시의 노래』중 네 번째 노래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노래
오래 전에 가 버린 시절
그녀의 눈가에 눈물 마를 날 없었네
이제 내 아이에게 이 노래를 가르치네
하나하나 아름다운 소절을 따라
눈물 흘러 내리네
소중한 기억으로부터 눈물 흘러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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