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설날 연휴에 가벼운 인왕산길 산행을 마치고 점심 요기를 할 요량으로 서촌 통인시장 내 유명한 짱깨집으로 향했는데 아뿔싸 식당 앞에는 연휴 기간 중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전화했다면 헛걸음 않았을 텐데 후회해본들 뭐하나 손가락이 뻣뻣하여 전화 한 통 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내 못남 탓인 것을.
통인시장에서 경복궁역 쪽으로 터벅터벅 힘 빠진 걸음으로 내려오며 어디서 점심을 때우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내 눈에 쏙 든 것이 “변호인이 먹는 돼지국밥집”이라는 간판이었다. 가게 폼새가 최근에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 영화 『변호인』의 인기에 편승한 광고 전략이 발 빠르다 해야 할 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에 입맛을 들여 서울에서도 더러 부산식 돼지국밥임을 내건 식당 몇 군데를 찾기는 했는데 부산에서 먹던 돼지국밥에 버금가는 맛을 내는 돼지국밥집을 서울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튼 글로 돼지국밥 돼지국밥 반복하니 영화 『변호인』의 장면처럼 누리끼리한 기운이 입가에 맴돌아 영 개운찮다. 지금이 저녁 식후인 탓도 있으리라.
세상이 먹방 천하다.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방송 역시 맛집 소개로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는 모양이다. 별 아이디어 없이 저렴한 제작비로 시청률을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겠거니 짐작된다. 나 하나쯤 방송 먹방 맛집 추천은 모른 척해도 괜찮을 듯 해서 이를 내세우는 업소는 가급적 피해가는 편이다.
짱개집에 헛발길을 하고서 그대로 지나치면 이 설날 연휴에 점심 때마저 놓쳐버릴 것 같아 변호인이 먹는 돼지국밥집 문을 열었다. 설날연휴기간 중이라 한산했는데 밥을 미리 말아 데워온 국밥을 먹는 동안 내가 돼지국밥을 먹는 겐지 돼지국물죽을 먹는 겐지 헷갈렸다. 정구지, 곧 부추도 미리 넣지 말고 따로 내 왔더라면 좀 더 아삭한 식감을 느꼈을 텐데.
그래도 시장기가 반찬이라고 후루룩 후루룩 국밥을 떠 넘기면서 “변호인”께서는 영화가 끝난 후 서울 살며 좋아하시던 돼지국밥을 어디서 드셨을 지 궁금했다. 아직 서울에 “변호인이 먹던 바로 그 돼지국밥집”이 나서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나처럼 돼지국밥은 부산에 가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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