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자의 머리 속에는 영어 단어 같은 것들 대신 별 쓸모없는 단어들만 남았는데 예를들어 ‘대척점’이라는 낱말이니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부터 지구의 반대편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대척점에 있는 나라는 남미의 파라과이라고 한다. 그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 살고 있는 아무개 씨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아무개씨가 나와 유사한 사회적 배경, 학력,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아무개 씨의 일상, 그가 품고 있는 희망 또는 욕망, 그가 느끼는 분노와 좌절, 슬픔과 기쁨은 나의 그것과 비교해서 얼마나 다를까? 나는 거의 똑같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설혹 아무개씨가 나와 매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일상과 그의 사고가 나의 그것과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까?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일 것이다. 그러니까 미친 놈 삽질하듯 파라과이까지 땅 구멍을 파 들어 갈 이유가 없다. 영화가 사람의 일상과 내면에 대한 탐구, 그표현의 종합이라고 한다면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주변을 쓱 한번 돌아봐도 거기에 답이 있는 것이다. 내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다운이라도 받아서 그의 영화를 꼭 보고야 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가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늘 영화로 보여주니까 말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늘 본인 주변에 있음직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본인의 탈을 쓴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감독을 업으로 하는 그에게 영화판 그 곳보다 쉽게 관찰하고 카메라의 뷰 파인더안에 옮겨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그가 연출한 영화 『잘알지도못하면서』의 주인공은 잘 알지도 못하는 예술영화를 만든 감독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영화에 예술성 운운하는 그 주변의 사람들이며 그들이 사는 게 뭔지, 사랑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때로 찌질하고, 때로 질퍽하게, 때로 한심하게 살고 사랑하는 이야기다. 마치 내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최고 인기배우 고현정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홍상수의 카메라 앞에 서는 이유도 내가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그것과 같은 것일까? 이 잡문을 쓰는 사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검색창에 입력을 했더니 다음과 같은 표제가 나온다. “네이버 지식iN 에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답변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홍상수에게 영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영화를 두고 엉뚱한 소리 씨버리지 말라며 세상을 향해 내미는 주먹감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가끔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 엄한 소리 씨버리지 말라꼬 세상을 향해 주먹감자를 내밀고 싶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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