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서 펼친 책 속에 만경강 갯벌 위에서 저녁 노을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한무리 도요새 사진이 곁들여 있었다. 손바닥 보다 작은 그 한 장의 사진에는 가까운 갈대의 윤곽만 뚜렷하고 먼 산 자취만 혼곤할 뿐 석양에 빗기어 도요새 무리는 뿌연 점으로만 보였다. 그래도 그것이 도요 무리라 믿고 보니 문득 옛 노래가 생각나 혼자 흥얼거려 보았다.
도요새 무리 대부분은 봄 가을에 번갈아 북쪽과 남쪽을 오가는 철새로 이 도요새가 우리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채 한 척(尺)이 넘지 않는 가냘픈 단구를 이끌고 노랫말처럼 대륙을 지나고 대양을 건너 거의 세상의 극점과 극점 사이를 철 따라 왕복하는 그 경이로움에 있겠다. 그 거리는 최장 12,000 킬로미터에 이른다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도요새 무리의 경우 뉴질랜드나 호주 연안에서 출발하여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거쳐 일부는 중국 대륙을 따라 시베리아 툰드라로, 일부는 한반도나 일본을 거쳐 캄챠카 반도나 더 멀리는 오츠크해를 건너 알래스카에서 이르러 한 철을 보낸 후 다시 남하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낸 도요새 무리는 중앙아시아의 험산 준령을 넘고 히말라야 산맥마저 넘어 인도 대륙을 따라 남하하기도 하고 우랄산맥 서쪽에서 여름 한철을 보낸 도요새 무리는 카프카즈 산맥을 따라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 해안선을 타고 남하하여 마다가스카르섬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그래서 히말라야의 가파른 설산을 오르는 클라이머는 만년설 위에 떨어진 도요새의 언 시신을 간혹 발견하는데 이 도요새의 천연 박제는 목을 길게 뽑고 갸냘픈 긴 다리를 한껏 뒤로 젖힌 비행 상태로 절명한 것이라 하니 이 얼마나 치열한 삶의 본능이요 처연한 죽임인지 읽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도록 뭉클한 느낌이다. 그러므로 도요새의 경지는 제비 무리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있다 할 것이니 어찌 사람들이 그 모습에 각별한 의미를 두지 않겠는가? 잠시 내가 책에서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을 도요새란 놈이 대체 어찌 생긴 놈일까 궁금했지만 도요새 무리는 무려 89 종이나 된다하니 만경강 하구에서 저녁 노을을 향하여 치솟아 오르는 그 놈들이 대체 어느 종에 속하는 것들인지 오지랖 넓은 조류학자 분이 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려니 하물며 내가 그 개체를 확인하여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아무튼 지난 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렸던 도요새의 경이와 함께 기억의 갈피에 묻혀있던 옛 노래는 오늘 다시 책 속에서 이 시대의 문사께서 남긴 비장한 산문과 함께 내게 나타났다. 그래서 이 깊은 밤 홀로 다시 듣는 옛 노래의 노랫말은 곰씹을만하고 리듬은 삽상하다. 도요새가 다니는 남국은 멀고 북국은 아득한데 오늘도 세파에 부대끼며 부박한 하루를 마감하고 귀가를 서둘렀던 필부는 「도요새의 비밀」이 궁금해져 늦은 밤 책상 머리에 앉아 도요새에 관한 책 한권을 또 주문하고야 말았다. 2009
도요새의 그 경이로운 이동에 관해서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일조 시간의 변화가 도요새의 체내의 호르몬 분비를 촉발하여 이동 충동을 유발시킨다는 설이 있다 한다. 또한 그 먼거리를 정확하게 여행할 수 있는 원리는 태양의 위치와 시간의 관계를 파악하여 방향을 지각하며 각 종 마다 일정한 경로를 왕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애초 도요새의 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기원 문제에 있어서는 먹이를 구하려는 소규모의 이동이 점차 대규모로 진화하게 되었다거나 차가운 지방에서의 월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규모 이동이 시작되었다는 설 등 학설들이 분분하여 아직까지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정광태
https://youtu.be/d9KwGsZwXrA?si=ZaGlVbaffRGryR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