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통가요라고 부르는 형식의 노래가 있다. 나는 이 형식을 뽕짝이라고 한다. 트로트라는 흔한 이름, 전통가요라는 좋고 멋진 이름을 두고 내가 뽕짝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렇게 불러야 그 형식의 노래에 실린 정감이 훨씬 더 살아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과 노래를 즐겨 들어왔는데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 목록에 뽕짝이 없었다. 언제부터 내가 뽕짝을 따로 즐기게 되었는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요즘에는 더러 뽕짝도 즐겨 듣는다.

뽕짝을 즐기게 된 이후 내 선곡 목록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이라는 가사가 특히 마음에 든다. 이 한 소절 가사 때문에 『울고 넘는 박달재』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 순수한 격정을 품은 사람만이 이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고 그 순수한 격정으로 이 노래를 불러야 제대로 부르는 것이라 생각했고 오늘 뉴스에 걸린 기사 하나를 읽고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해 강원도 영월로 여행을 나섰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영동고속도로 정체로 38번국도 쪽으로 우회하는 길에 차를 올렸다.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닦인 38번국도 위에는 충북 제천을 조금 지나 박달재터널이 있었고 그 터널 옆 샛길 위에는 박달재라는 이정표가 서 있었다. 여기가 노래 속의 그 박달재겠거니,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박달재 고갯길이 국도길이었겠거니 생각하고 그대로 박달재터널을 쌩하고 지나쳤다. 다시 그 38번 국도를 지나칠 일이 있다면 터널 앞에서 차를 꺾어 박달재 고개길을 넘어가고 싶다. 그때에는 반드시 고개 마루에 차를 세우고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이라는 노래를 목청껏 혼자 소리로 부르게 되리라. 2009. 5.


 

다시 듣는 노무현의 애창곡 '울고 넘는 박달재'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그의 인생 역경에 대한 설움 묻어나는 듯 2009-05-25 17:28 노컷뉴스 이명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마을 뒷산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서거한 지 사흘째를 맞은 가운데, 그가 생전 애창곡으로 뽑은 '울고넘는 박달재'의 노랫말이 묘하게도 새삼 격랑 가득했던 그의 생을 대변하는 것 같아 '화제'가 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은 사실 '울고넘는 박달재'만이 아니다. 대권 후보 시절 직접 기타를 치며 양희은의 ‘상록수’를 부르기도 했고 한때는 '작은 연인들'을 애창곡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4년 10월 충북 제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지역 민심을 겨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울고넘는 박달재'를 그의 '18번'으로 꼽으면서 노 전 대통령 애창곡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박달재는 1217년 7월 거란군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김취려 장군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전공을 세운 전승지로 유명하며 제천에 위치해 있다. '울고넘는 박달재'는 대한민국 건국 직후인 1948년 박재홍이 불러 큰 인기를 모은 트로트곡으로, 작사가인 반야월이 악극단 지방순회 공연 중 부부로 보이는 남녀의 이별 장면을 목격하고 지은 노래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념에 찬, 그러나 굴곡진 정치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은 1절 중에서도 후반 부분.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그리고 2절 중반부는 36년간 생사고락을 같이한 권양숙 여사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라는 구절은 더욱 구슬프게 들린다. 말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학창시절 내내 1-2등을 놓치지 않고도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유년의 설움.

 

7년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으나, 1년도 채 안 돼 법복을 벗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그럼으로써 우리사회 모순과 위선에 정면으로 맞선 청년의 고통. 서슬 퍼른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과 그 이후 정부 각료들의 부정부패를 꼬집으며 한 번도 쉽고 편한 길을 택하지 않은 장년까지 이어진 소신의 삶.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나서도 "내가 파격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만큼 타성에 젖었다"며 소통과 개혁을 부르짖었던 노무현.

 

이 모든 외롭고도 힘겨운 시간을 끝내고, 고향 봉하마을에 도착해 "야~ 기분좋다!"를 외치며 감개무량해 했던 노 전 대통령은 '보통사람'의로서 삶을 불과 1년여 만에 '스무 길 아래 바위덩이에 온 몸을 때려(유시민 친필편지 일부)' 마감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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