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럭 많은 책을 한꺼번에 주문하고 말았다. 그 속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네 권이 섞여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자 유홍준이 글을 참 재미있게 쓴다는 것은 인정해야겠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일본인들은 고대사의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의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

 

평소 이해하고 있는 한일관계를 간결하고도 선명하게 나타낸 표현이다. 책은 일본 큐슈와 간사이 지방을 여행하며 일본인이 귀화인(歸化人)이라고 표현하는, 저자는 도래인(渡來人)이 맞다는,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일본 고대 문화 형성에 기여한 흔적, 그 문화유산을 안내하는 얼개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문화의 창의성과 독자성, 이를 바탕으로 한 일본문화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우리 저작물로 이만큼 수준 있는 저작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가 일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즉 우리가 "근대사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다른 한편 과연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고대사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자신들과 주변국을 둘러싼 고대사를 왜곡하는 것일까? 역사를 당대의 불순한 의도와 필요 때문에 왜곡하는 일은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도 아니고 또 그 대상이 꼭 고대사에 한정되는 것만도 아니라는 점은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박노자의 『거꾸로 읽는 고대사』에도 잘 나타나있다. 그러니 일본이 고대사를 왜곡한다 해도 그것이 꼭 콤플렉스, 즉 저자가 함의하고 있는바, 도래인으로부터 고대 문화와 문명을 전수 받았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서 왜곡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고 그러기에 행간에 도래인에 대한 지나친 애정 표현이 가끔은 읽기에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해두고 싶다. 문화 혹은 문명의 전파가 꼭 물이 흐르듯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것일까? 문명은 그렇다쳐도 문화 간에 높낮이가 따로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 전파라는 말 자체도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책 속에서 자주 인용하는 말, 문화와 문명의 교류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고 교류라는 말은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것이지 일방 전파나 전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해석이 또 가슴에 와 닿는다.

 

일본은 어떤 방향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속마음을 편히 드러내놓기에 불편한 명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 좋은 책인 까닭은 그 불편함을 극복하려는 정면돌파로 읽히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그 불편함에서 대하여 저자가 자주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책 속에서 읽히기 때문이다. 하긴, 허접 서평을 남기는 나 또한 그 부담스러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책은 일본 독자들을 위해 일본어 번역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라 한다. 일본어판이 국내에서 발간된 것과 얼마나 다를 것인지  궁금해진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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