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사람들이 맛난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은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는 원리와 같다. 그저 얼굴이 예쁘다, 잘생겼다는 것만으로 좋은 여자 또는 남자일 수 없듯 맛있다, 미각이 즐겁다는 것만으로 좋은 음식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음식이라는 것이 사람의 오감과 다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란 것이 또 단순한 것이어서 마음 편안한 자리에서 먹는 값싸고 맛난 음식을 최고의 음식이라 할 수 있겠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쫓아다니는 것은 그 단순한 진리를 쫓아 삶의 즐거움을 찾는 일인 것이다. 

내 경우 맛난 음식을 쫓아다니는데 관심이 덜한 편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아무데서 아무거나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최소한 값 비싸고 맛까지 없는 음식을 내놓는 음식점은 피하자는 원칙은 있다. 이런 기준으로 꼭 찾지 말아야 할 곳 바로 유명 관광지 음식점이다. 여행을 즐기는 내게 유명 관광지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일은 더러 고역이다. 유명 관광지 음식점일수록 양 작고 맛없는데도 값까지 비싼 음식점이 많다. 그래서 굳이 여행 도중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라면 차라리 인근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하고 있다. 다만 어제 밤에 옛 사진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음식 사진을 보자니 오래 전 찾았던 충남 서산의 개심사(開心寺) 앞 어느 음식점이 떠올랐고 그 음식점이야말로 관광지 식당 치고는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내놓던 예외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어 몇 자 잡문을 남겨보자 한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로 소개한 개심사는 그 명성과 달리 휴일임에도 찾는 사람 발길이 많지 않은 한적한 절이었다. 소박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절이었다 하겠는데 그런 개심사를 닮아 그런 것인지 일주문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식당들도 한적하고 소박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도 관광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내 생각은 당연해서 한참 망설이다가 점심때를 제법 넘긴 시간에 밀려드는 허기를 참을 수가 없어서 딱 허기만 달래겠다는 생각 이외 일체의 기대를 접고 절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음식점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도토리묵 한 접시와 비빔밥을 시켰다. 그런데 시장이 반찬이었던지 먼저 내온 도토리묵은 식초를 적당히 풀고 오이 조각과 양파, 상추와 함께 비빈 다음 볶은 깨를 풀어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혀끝에 돌아 무척 맛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 나온 조선 된장 풀어내고 바지락 몇 개를 띄워낸 된장찌개와 기름기라고는 송구스럽게 올라온 계란 프라이 하나만 얹힌 비빔밥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비빔밥 특유의 매콤함을 잃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은 주방의 솜씨와 함께 푸석푸석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찰진 우리 쌀, 그 밥맛에서 나온 것이었을 게다.

시장기가 제법 가신 뒤에야 음식을 내온 사람들에게 눈이 갔다. 식당을 운영하는 듯 한 젊은 부부의 조신한 말투와 행동이 은근했다. 절을 드나들어 봐야 내가 세상 이치에 눈 뜨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사람의 말투나 행동거지의 경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나도 연식이 차가는 때문일 것이다. 예상외로 좋은 식사를 하고 계산서를 받아 들었더니 이만하면 값싸고, 양 많고, 맛있는 집이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오래 전 잡문으로 남긴 개심사 답사기를 포스팅한 바 있거니와 가을 낙엽을 밟으며 찾아간 개심사에서 화사한 봄꽃이 필 무렵 꽃향기 맡으러 개심사를 다시 찾겠다 하였다. 올 봄에는 못 이룰 리 없는 그 소박한 다짐을 꼭 이루어야지 싶고 그때 개심사 입구 앞 그 식당에서 도토리 묵 한 접시, 비빔밥 한 그릇 다시 맛보아야지 하는 기대도 덧붙여 놓는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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