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내 입안을 살펴본 의사는 편도 상태가 좋지 않다며 항생제를 처방했다. 회사 빌딩 지하에 있는 병원 가정의는 얼마 전에 바뀌었는데 말하는 태도나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신중하여 믿음이 간다. 점심 식사 후 약봉지를 입안에 털어 놓으며 의사가 환자에게 신뢰감을 준다면 그 의사는 분명 용한 의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식후에 항생제까지 삼켰으니 쏟아지는 졸음은 어쩔 수 없다. 책상 위에 진척 없는 일들이 기입된 서류를 펼쳐 놓고 정작 졸음을 참느라 손과 시선은 인터넷 검색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우연히 시선에 담긴 포스트 제목이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이었다. 왠지 익숙한 낱말 조합이라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1년 전에 읽은 마종기(馬鍾基)시인의 산문집 제목이었음을 기억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별 이유도 없이 세상 고민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끙끙거리며 살았던 20대 초 기억하기 싫은 일들만 많은 그 시절에 내가 읽던 책의 저자 중 마종기라는 분이 있었다. 시집을 놓아 버린 지 오랜 세월이 흐른 작년 이 맘 때 나는 시인으로 문단 사십 년 세월의 시인이 세상에 내어 놓은 첫 산문집을 읽었고 『별…』은 꽤 여러 날 동안 내 손 안에 있었는데 고작 1년 지나 잊고 있었던 것이다. 196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방사선 전문의가 되어 정년까지 일한 후 귀국한 마종기 시인은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모국어를 통하여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 시인으로 모국에서 입지를 굳힌 작가가 가끔 재미동포 사회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 30여 년 만에 첫 산문집을 낸 연유에 대해 시인은 『별…』의 머리말에서 미국에서 "괜찮은 의사 노릇을 하면서 한국 문학을 뒤쫓아 가며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해 내가 지불한 것 중의 몇 개는 문학 얘기 안 하기와 산문 덜 쓰기 같은 것”이었다고 했다. 『별…』 속의 글들은 모국의 시인으로서 미국 의사로서 제대 직후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이민자로서의 관점과 1970년대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30년이라는 넓은 시점 그리고 미국이라는 드넓은 공간 속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별…』의 행간에는 나를 감동시켰던 작가의 시작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해설이 산문의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작가는 "모국어도 없고 가까운 친구 하나도 없는 외국에서 일상의 외로움에 오금을 움츠리고 공포와 슬픔과 환희의 절정을 매일 오가면서 살았던 몇 해 동안의 의사 수련은 엉뚱하게도 내 문학의 확실한 물고였고 내 시의 본향이었다”고 했고 자신을 미국으로 떠나보낸 아버지 마해송이 도미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의 서러움과 죄책감을 토로했다. 하지만 책 속에서 나를 시선을 더욱 끌었던 글은 작가를 형처럼 따르며 근 20년을 함께 한 백인 초음파기사의 죽음에 관한 단상을 남긴 「그 남자의 남편」이라는 제목의 단문이었다.
부인과의 사이에 예쁜 딸 하나를 뒀으며 볼테르의 철학에 심취되어 책 읽기를 좋아하던 짐이라는 이름의 초음파 기사가 어느 날 작가에게 본인이 동성연애자임을 고백하고 자기 남자친구와 함께 동성연애자들이 많이 사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려니 그곳 병원에 취업할 수 있도록 추천장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단다. 결국 짐은 희망대로 샌프란시스코로 갔고 더러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오곤 했단다. 이어 지는 글은 이러하다.
(짐이) 샌프란시스코로 옮긴지 몇 해 지난 어느 날 밤에 걸려온 낯선 목소리의 전화는 내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하고 말았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초음파 기사 짐을 아시지요? 내가 짐의 남편입니다. 짐이 며칠 전에 죽었습니다. 아실 만한 병으로요. 평소에 닥터 마를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해서 사망 소식을 알려 드립니다.」 ... 지난 몇 해 전 그곳에서 혼자 넋 놓고 바라보던 샌프란시스코의 황혼. 그 황혼을 배경으로 유난히 흰 얼굴의 짐이 '나는 세상에 구속되지 않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았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 쓰린 가슴으로나마 잠시 그를 생각하며 묵상할 수 있었다.
시인은 "여기 실린 글들은 시인이 쓴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에 사는 한 교포의 어느 날의 한숨이고 평범한 의사의 어느 날의 시선이고 옆집 친구의 한담이고 가끔은 주위를 살피며 못을 박으려는 시정인의 매끄럽지 못한 주장이다"라고 했다. 시인은 좋은 의사였을까? 그를 좋아한 남자, 죽은 짐의 남편이 남긴 말에 의하면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시인을 이제야 다시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은퇴 후에 마음 한편에 차곡차곡 담아온 주옥같은 시론을 펼쳐 놓은 것이 아니라 대신에 담배 열 갑 값을 월급으로 받던 인턴 생활을 하다가 담배 2,000갑 월급을 준다는 미국행을 결심했다는 이민자로서 모국어를 잃은 이국땅에서 의사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볼초한 아들로서 모국어를 가르치지 못한 안타까운 아비로서 그리고 동성애자의 죽음을 기억하는 좋은 이웃으로서의 넋두리를 풀어 놓은 까닭이다. 만남은 소중하다. 소중했던 만남을 기억하며 사는 일은 귀중하다. 그러므로 고작 작년에 만났던 책 한 권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나는 그간 소중했던 만남들을 기억하기에 얼마나 지난 온 궤적들을 집어 봐야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기쁨이 될지 모를 일. 마치 시인에게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의 밤하늘에 빛나던 별이 모국의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의미했던 것처럼. 2003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다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 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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