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에 듣는 귀는 있어서, 이어폰은 유선을 고집하고 있다. 그간 이런 저런 저급의, 또는 내게는 제법 큰 돈을 들인 중급의 이어폰을 섭렵한 결과, 품질과 가격을 종합할 때 이어팟(EarPods) 이상 가는 이어폰은 아직까지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안드로이드폰을 쓰면서도 이어폰은 여전히 이어팟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요즘 같은 혹한의 겨울에 유선 이어폰을 쓰기가 곤혹스럽다는 점이다. 추위에 두터운 외투를 입은데다 목도리까지 하고서 교통요금이나 신용카드 결제를 위해 유선 이어폰이 꽂힌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자주 꺼내다 보면 이어폰 선이 성가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뿐 더러 스스로 보기에도 소위 모양까지 빠짐은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 와중에 어제 밤에 “[쿠팡 직수입] 샤오미 블루투스 이어폰 에어2 SE”라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주문한 것은 순전히 충동구매였다. 어제 퇴근 후 집에서 옷을 갈아 입고 스마트폰에 연결된 유선 이어폰 잭을 제거하면서 성가시네, 하고 생각했는데 마침 쿠팡에서 주문한 식료품 배송 알림이 뜨길래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보니 거기 샤오미 블루투스 이어폰 광고 정보가 보였으며, 그간 내가 숱하게 당해온 중국 제품의, 샤오미의, 저가 블루투스 이어폰의 흑역사를 깜빡 망각하고 주문을 질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잠시 후에야 제 정신을 차리고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주문을 취소할까, 가격도 싼 데, 그래도 이어팟 보다는 비싸잖아, 딱 혹한의 겨울 이 짧은 한 동안만 쓰는 걸로 할까, 별 생각이 오고 가는 동안 이놈에 로켓와우는 벌써 배송이 시작되었음을 알렸고, 이제 주문취소는 안되니 반품할 밖에 없는데 그것도 성가시겠네 고민하는 중 밤은 깊어 이 사소한 고민은 고민대로 놔두고 잠든 사이 샤오미 블루투스 이어폰은 새벽 공기를 가르는 로켓와우를 타고, 두둥 우리 집 현관 문 앞에 도착해버렸다.

 

이에 오늘 아침 출근 길, 이 문제적 샤오미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출근한 소감을 정리할 차례, 거의 충전이 다된 상태로 배송이 되어 포장을 뜯은 즉시 스마트폰에 페어링할 수 있었으며 페어링 과정 역시 별 거 없다 싶을 만큼 수월했다. 그리고 문제적 음질, 확실히 3만원짜리 블루투스 이어폰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들리며, 소위 음질의 가벼움 역력하나 다른 한편으로 그 동안 나를 상당히, 자주 실망시켰던 뭇 저질 이어폰들의 ‘못 들어 주겠다’ 음질은 결코 아니라는 점, 가격을 생각하고 이것이 블루투스 이어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들어줄 만은 하다로 결론 낼 수 있겠다. 다른 제품 후기들처럼 지하철 안에서의 다소간 끊김 현상은 있으나 불편하거나 거슬릴 수준은 아니고 다만, 크기와 중량은 큰 바위 얼굴인 내 기준으로도 약간 크고 귓밥에 뭔가 얹힌 무게감이 느껴져 이 점 구매에 참고하시면 되겠다. 하여간 이렇게 더럭 내 손에 들려버린 샤오미 블루투스 이이폰, 최소한 이 혹한의 한 시즌은 나와 함께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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