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에서 온 꽃 │ 조영남 │ 2010년 │ 개인소장
오래 전 작고하신 형은 세상사 흑백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나도 세상사 흑백이 분명하다. 집안 내력이리라. 젊어서부터 가수 나훈아의 열혈 팬이었던 형은 한편으로 로라 브래니건(Laura Branigan)이라는 가수가 부른 「글로리아」(Gloria)라는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부지불식간에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는 했는데 노래 앞부분을 허밍으로 이어가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고 골이야"(calling Gloria)라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 나름 가요 애호가요 흑백 분명했던 형이 증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던 가수가 있었는데 바로 가수 조영남이었다. 「화개장터」빼놓고는 지 노래도 없으면서 남의 노래를 지 좃대로 부른다는 것이 형이 가수 조영남을 비난하는 이유였다. 이렇게 조영남을 향한 언사가 사뭇 거칠기는 했어도 형은 한참 어린 동생이었던 나에게 험한 말조차 한적이 없었던 내게 둘도 없는 형이었다.
형에게 증오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던 가수 조영남을 나는 당대 최고 가수의 한 사람으로 여겨왔다. 그가 노래 이외의 문제로 여러 구설에 휘말리며 좌충우돌에 가까운 행적을 이어왔다 해도 형 말대로 지 노래는 아니나 「모란동백」 같은 노래 그리고 지 노래인 「사랑 없인 난 못 살아요」같은 노래를 조영남 아닌 그 누가 그렇게 멋지게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그 조영남이 노래 말고 회화 창작활동에도 열심이었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물론 가수 아닌 조영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말았는데 조영남이 대작 화가를 고용해 그림을 그리게 하고 이를 마치 자신의 작품인양 하여 남에게 팔아먹은 사기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재판에 회부되어 어제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는 언론 보도를 보게 되었다.
사실 유명화가의 대작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럽 바로크 회화의 거장 루벤스는 아예 그림 공장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여러 명의 화가를 고용하여 마치 그림을 찍어내듯 양산한 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림을 팔아 치웠다. 그래서 오늘날 루벤스의 것으로 알려진 작품 한두 점 소장하지 않은 미술관은 주요 미술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물론 루벤스는 그의 이름으로 팔리는 작품들이 대개는 대작 작가들의 손을 거친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작품을 사가는 사람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 작품들은 루벤스의 화실에서 나온 작품이지 루벤스가 처음 시작해서 마감까지 완성해낸 작품을 의미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영남의 그림 대작 사건이 세간의 논란이 된 후 인터넷 검색 기사에서 봤던지 아니면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던 것인지 하여간 화가가 조수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한 것이 무슨 비난 받을 일이며 검찰 수사까지 받을 일이냐는 의견을 접한 적 있다. 루벤스 사례에서 보듯 맞는 말이다. 이 나라 법원은 최종적으로 조영남 그림 대작 행위를 법을 위반한 범죄라고 보지 않았고 그것을 예술과 사회 문제라고 보았다.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작품이라고 발표한 미술 작품이 대작 작가의 손을 거쳤다는 것을 밝히지 않고 이를 판매했다는 점에서 법적 판단을 떠나 이 부분, 조영남에게 언짢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이 팔순의 가수 조영남은 나를 포함하여 여전히 팬층이 탄탄한 시대의 소리꾼이요 속은 알 수 없으나 천박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연예인 부동산 자산 보유액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에 단골에 등장하는 거액 빌라 소유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조영남이 대작 작가까지 고용하여 작품을 만들고 이를 팔아 먹은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흔한 말로 있는 놈이 더 무섭다는 당연한 세상사의 이치가 만들어낸 해프닝일 따름일까? 공부에 별 흥미도 없고 다른 기발한 재주마저 없었던 형은 공무원으로 취직하여 한 세상 그럭저럭 잘 살다 바람처럼 세상을 등졌다. 조영남의 화투 그림 대작 논란을 접하며 엉뚱하게 작고한 형이 생각나 남기는 잡문인데 형이 살아있었다면 조영남에게 아마 욕 꽤나 퍼부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깊은 밤에 노래 한 곡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수 조영남의 노래를. 그러게, 사랑 없이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조영남
사랑없인 난 못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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