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 모리조│ 접시꽃과 어린아이 │ 1881년 │ 독일 쾰른 발라츠-리하르츠미술관
한가림디자인미술관,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전
2016. 1.
19세기 말 프랑스 인상파 화가로 활동했던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와 본의 아니게 그 인상파 화가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버린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는 공통점이 많았다. 화가로서의 재능은 말할 것도 없었고 둘 다 당시로서는 전위예술가 그룹에 속했던 만큼 진보적 예술관을 가졌으며 둘 다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유한 상류 집안 출신이었고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다는 점도 똑 같았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가지고 교제를 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마네가 모리조를 만났을 때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는 점이었다. 남녀의 교제란 것은 사실 당사자 밖에는 그 속내를 모르는 은밀한 부분이라 두 사람이 어느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지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동업자로서 두 사람은 제법 오랜 시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으며 베르트 모리조는 결국 아두아르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와 결혼했다. 이 알쏭달쏭한 두 남녀의 관계 때문에 후대 호사가들은 오늘날의 막장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지만 두 사람은 끝내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외젠 마네와 결혼한 베르트 모리조는 쥴리 마네라는 이름의 예쁜 딸을 낳고 이 딸을 소재로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전에서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의 작품 「접시꽃과 어린 아이」라는 작품을 봤다. 1881년 베르트 모리조는 파리 남쪽 베르사유와 가까운 센강에 면한 부지발(Bougival)이라는 아름다운 마을에 별장을 얻어 여름 휴가를 보내게 된다. 여기서 모리조는 남편 외젠 마네와 딸 쥴리, 쥴리의 보모 파지가 등장하는 풍경화를 남기게 되는데 그 중 한 작품이 서울에서 우리 관람객을 맞게 된 것이다. 화폭의 중심에는 모리조의 딸 줄리가 서 있고 세상 다른 어떤 아름다움과 비견될 수 없는 만 세 살 된 딸 아이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면서도 모리조는 딸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는 대신 눈부신 여름 햇살을 따라 담장에 기대 피어 오른 꽃과 나뭇잎의 색상과 그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쥴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금발의 어린 여자의 뽀얀 피부 위에 부풀어 오른 그 볼 살 만큼은 모리조로서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화폭에 담긴 쥴리의 모습은 분명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형태보다는 빛과 그 빛을 담은 색상의 조화를 중시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기법에 따라 흐릿한 외곽으로 쥴리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을 뿐인데도 그 어떤 정교한 인물화보다 쥴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작품에 화가이자 엄마인 모리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인상파 화가들이 근대 서구 회화사에 남긴 업적이야 재론할 여지도 없을 만큼 큰 것이지만 여기에 꼭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이들이 여성 화가들을 화단의 본격적인 주류로 끌어올린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베르트 모리조는 인상파 화가들의 핵심 중 핵심 멤버였고 인상파 화가들이 추구했던 회화 이념들을 작품 활동을 통해 충실히 답습했지만 <접시꽃과 어린아이>와 같은 작품은 여성 화가가 아니면 결코 다룰 수 없는 소재와 형식을 가지고 성취한 수준 높은 작품이라 고흐의 작품 「랑글루아 다리」와 함께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전을 관람한 후기로 남겨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