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메시지, 다시 말해 보다 나은 자아로 거듭나라는 메시지는 애초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 보이는 예술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백자 달 항아리가 있다. 이 항아리는 쓸모 있는 도구였다는 점 외에도,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항아리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였다. 가마 속으로 뜻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에 얼룩이 무작위로 퍼졌다. 이 항아리가 겸손한 이유는 그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여서다. 그 결함들은 항아리가 신분 상승을 향한 경주에 무관심하다고 시인할 뿐이다. 거기엔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지혜가 담겨 있다.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세속의 지위 때문에 오만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또는 이런저런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사람에게,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은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겸손함의 이상을 확실히 목격함으로써 자신이 그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자 여기, 겸손함은 항아리 속에 담겨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탕은 진실하고 착하지만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방어하려고 되레 오만이 습관처럼 쌓인 사람이 이 달항아리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어떨까? 도자기 한 점 속에 암호처럼 스민 가치들의 보호 아래 다른 삶을 향한 갈망이 움틀 수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영혼의 미술관』중에서
『영혼의 미술관』 이라는 책을 보고 있다. 책을 받아 보고서 우선 묵직한 무게에 놀랐다. 내용조차 무거우면 어쩌나 싶었을 것이다. 존 암스트롱은 전에 알지 못했던 저자고 알랭 드 보통의 경우 전작 『여행의 기술』을 조금 읽다 그 무게 때문에 중도에 책을 놓고만 적이 있어서 주문 잘 못했나 또 서가로 주저앉고 말 책인가 싶었다. 서가에 주저 앉을 때 앉더라도 돈 주고 산 책이니 그림이라도 보자 싶어 책장을 넘기다 발견한 사진이 위 조선 후기 백자 달 항아리 사진이고 위 인용글은 그 사진에 붙은 저자들의 해설이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라 급 반색하고 머리말부터 읽기 시작했다. 백자 사진에 붙은 우리 것이 아닌 해설이 더 반가웠던지 모를 일이다. 겉 표지 날개에 붙은 저자의 약력을 쓱 훑어보니 보통이 1969년 생, 암스트롱이 1966년 생이다. 바야흐로 밴드(age band)의 시대다. 그래 이 친구들은 책에서 무슨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궁금하다. 책이 무거워 가방에 넣고 다니기 꽤 번거롭겠다. 그래서 백자(白磁)는? 명작은 과묵한 것이다. 저 위에 저자들이 써놓지 않았는가? 말 하지 않는 미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