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대화재기념탑과 주변 거리

The Monument & Lombard Street, City of London, UK

2011. 8.

 

1666년 런던 동쪽 시티(City)지역에서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가 발생하여 가옥 만 삼천 여 채가 불타 시티지역 주민 대부분이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는 재난을 당했다. 화재는 처음 빵 가게에서 실화로 발생했는데 때 마침 불어온 강풍으로 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화재가 일어난 장소가 목조 가옥이 밀집된 서민 동네였던 데다 당시 소방기술이 열악하여 조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없어서 화재는 나흘간 런던 시티지역을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다. 화재 후 런던 시티지역에서는 목조로 가옥을 지을 수 없게 되었고 모든 가옥은 석재 혹은 벽돌로만 건축되도록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었다. 또 이 법령에 따라 화재 확산을 막도록 건물 간의 거리가 엄격히 유지되었다. 잿더미가 된 시티지역 서쪽에는 당시 영국왕 찰스 2세의 궁전 화이트 홀(Palace of Whitehall)이 동쪽에는 역시 왕가의 건물인 런던 타워(London Tower)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이 두 건물은 화재로 손상을 입지 않았다. 다만 화재 지역 한 가운데 있던 세인트 폴 성당(St Paul's Cathedral)은 화마를 비켜갈 수 없어 이 역시 잿더미가 되고 말았는데 왕궁은 화재에서 살아남아도 성당만은 잿더미가 된 서민들의 주택과 그 운명을 함께 했다. 세인트 폴 성당은 화재 후 런던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복구되어 오늘날 시티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역시 큰 성당은 그 격이 다른 법인가 보다.

 

런던 시티를 불태워 버린 이 미증유의 재난을 기리고자 1677년 최초의 발화점과 가까운 푸딩가(Pudding Lane)에 거대한 기념탑(Monument to the Great Fire of London)이 세워졌다. 높이 62m의 이 탑은 건설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었다고 한다. 이 탑의 정식 명칭은 런던 대화재 기념탑인데 영국 사람들은 이 탑을 그냥 기념탑(The Monument)이라고 부른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의 특권이리라. 탑 내부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어서 그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수 있어서 19세기까지는 드넓은 평원지대에 자리한 런던 시내를 가장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명소였다. 이 탑은 오늘날에도 건설 당시 그 모습을 유지한 채 원래 그 자리에 서 있고 그 내부는 여전히 개방되어 있지만 비싼 입장료를 내고 그 탑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런던 시내를 조망하기에 높이 160m의 현대식 관람차 런던 아이(London Eye)가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다 기념탑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현대식 빌딩조차 오래 전에 기념탑의 높이를 훌쩍 뛰어 넘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런던에서 일할 때 나 역시 런던 대화재 기념탑 근처를 더러 지나가며 더러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탑 위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1677년 런던 대화재를 기리기 위해 세워져 오늘날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념탑이 런던 아이보다 주변의 현대식 빌딩보다 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산이 없는 평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런던의 저녁 햇살은 길고도 길다.

'○ 영국 이야기 > 런던 스트리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낮술을 때리다  (0) 2021.01.15
기마경찰  (0) 2020.05.28
크롬웰의 동상  (0) 2020.05.08
런던에서 생긴 일  (0) 2020.04.29
노래는 나이를 먹는다  (0) 2020.04.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