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2007 BR


영국 살 때 영국에서 스위스 인터라켄까지 차를 몰아 가족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기억하기로 경유지 포함 편도 1,500km 정도되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자가운전을 해왔고 영국에서도 자가운전을 했지만 유럽 여행 중에는 절대 운전석에 앉지 않았다. 낯선 곳인데다 영국 차의 우측 운전석은 유럽의 좌측 통행 도로와 반대라 아내가 운전석에 앉는 것을 극구 꺼렸기 때문에 유럽 대륙 여행 중에는 내내 내가 우측 운전대에 앉아 좌측 통행 도로 주행을 해야 했다. 그 덕을 쌓아 귀국 후 아내와 동승할 때 운전은 아내가 군말 없이 도맡아 하고 있다.

이렇게 자가 운전으로 먼 장거리 운행을 다닐 때면 운전 중 무료함을 달래고 졸음을 쫓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데 영국 살 때 마침 국내에서는 장기하의 노래가 크게 유행해서 운전자인 나도 또 가족들도 여행 중 지칠 때면 장기하의 노래를 틀어놓고 차내에서 함께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며 기분 전환을 했다. 영국에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을 가로질러 몽 생 미셸(Mont St. Michel)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초행길인데다 톰톰 네비게이션이 신통치 않아 고속도로를 이어 달려야 할 것을 그만 진출램프 쪽으로 차선을 잡아 뜻하지 않게 르 아브르(Le havre) 시내에 들어서고 말았다. 겨우 차를 돌려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했는데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보니 힘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다시 고속도로 위에서 엑셀레이터에 얹은 발목에 힘이 들어가야 할 때, 장기하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틀었는데 아들 스스로 지치기도 했을 것이고 또 힘이 빠져버린 아비를 응원한답시고 <달이 차오른다>의 후렴 ‘워어어오오오 워어어오오오’를 신나게 따라 불렀다.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잠깐 사이, 노래를 멈춘 아들이 자못 심각하게 내게 물었다. “아빠, 근데 대체 어디를 가자는 거에요?”

자전거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얹어 놓고 라이딩 중에 노래를 듣는데 요즘 여는 플레이리스트에 장기하의 노래가 몇 곡 들어있고 오늘 일요일 라이딩 중 장기하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가 스피커에서 울리길래 옛 기억을 떠올리며 남겨보는 늦은 밤의 잡문이다. 돌이켜보면 얼마 되지 않은 지난 과거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아들은 이제 그런 엉뚱한 질문으로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던 어린이가 아닐뿐더러 오늘 일요일 저녁 밥상에서 듣기로 아들의 키가 일 미터 구십을 넘었다고 한다. 세월 빠르다.


장기하와 얼굴들 - 달이 차오른다, 가자

'○ 플레이리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루베리 힐  (0) 2020.06.08
발정난 꽃밭  (0) 2020.05.31
모란 동백  (0) 2020.01.21
사랑의 재개발  (0) 2019.11.26
가을비 우산 속  (0) 2019.11.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