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퍽 펠릭스토우

Felixstowe, Suffolk, UK

2013. 3.

바닷가 언덕 위의 우체국에는 그림 같은 영국 풍경을 담은 그림엽서를 팔았다. 점심 먹고 그 우체국에 들려 그림엽서를 구경할 때면 누군가에게 이 엽서를 꼭 보내야 할 것 같은 하는 조바심이 생기곤 했다. 우체국 왼쪽 웨이벌리(Waverly) 호텔, 겉보기는 근사하나 이제는 달방 세놓는 신세로 전락한 그 오랜 호텔 바에서 어느 해인가, 동료 영국직원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라고 했지만 내 기분으로는 망년회를 열었으리라. 우체국 오른쪽에는 옷가게 코즈(COES)가 있었다. 코즈에서 산 멋진 영국산 모직 콤비는 아직도 잘 입고 있다.

우체국과 코즈 사이 해밀튼 로드(Hamilton Rd.)라는 멀쩡한 이름대신 모두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라고 부르던 거리가 열려 있었다. 영국 여러 곳을 여행하며 내 눈에는 우리 읍내도 못 되 보이는 마켓 타운(market town) 곳곳에서 하이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수도 없이 봤다. 하이 스트리트에서는 내 입맛에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스파게티 봉골레를 내던 이태리 음식점 벤코토(Bencotto)가 있었다. 내 진즉 스파게티 봉골레는 끊어버렸지만 스파게티 봉골레에 곁들여 마시던 비라 모레띠(Birra Moretti) 맥주 맛만큼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벤코토 옆에는 짐과 도나(Jim & Dona’s)의 헤어 살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이 스트리트 끝에는 북해(North Sea)를 바라보는 아름답고 드넓은 해변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변 가에는 연중 언제 문을 여는지도 모를 쇠락한 레스트랑 스파 파빌리온(SPA PAVILLION)이 따뜻한 봄볕 아래 외로이 서 있었는데 그 앞 벤치에서는 영국의 모질고 긴 겨울을 이겨낸 노인들이 앉아 한 해 더 살겠구나 하며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 봄볕을 쬐고 있었다. 해변에서 부두로 이어진 길에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지 짐작조차 할 수 없던 싸구려 호텔 돌핀. 이제는 아마도 동유럽에서 몰려와 영국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부두 노동자들의 숙소가 된 호텔 돌핀 앞에는 역시나 싸구려 스포츠카가 떡 하니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고 그 호텔 너머 해변 쪽으로 걸어가자면 해변가 오두막 헛(hut)들이 촘촘히 자리 잡아 넓게 열린 바다를 바라보는 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피자헛(hut)의 그 헛, 사전적 의미로만 알고 있던 그 오두막 헛을 영국에서 처음 봤고 영국에 사는 동안 지겹게 봤다. 헛 사이사이 보이던 그 북해 바다는 내가 카페리에 차를 싣고 네덜란드로 여행 떠나던 그 바다였다. 사무실로 돌아갈 시간, 해변을 등지고 언덕 위 하이 스트리트 길을 다시 걷다 보면 어느 골목 모퉁이에 16세기 튜더양식 건물이 “데헷, 16세기? 머 그 까이 꺼” 하며 서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옛날 기차 역사로 쓰이다 이제는 그 쓰임이 다하여 일부는 슈퍼마켓으로 그 부지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내 차문을 따던 순간 바라다보이던 마치 동네 경로당 같던 영국 보수당 지구당 당사(conservative club)에 들락거리던 사람들이 보였는데 할매들은 보이지 않고 모두 백발성성한 꼬부랑 할배들만 뻔질나게 그 클럽 건물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지난 일, 영국에서의 마지막 해 그 봄에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더라 궁금해서 열어본 옛 사진 파일들 속에 그해 3월 영국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재원 생활 마치고 귀국할 때 내 심정이 딱 그 말, 시원섭섭하다는 것이었고 다시는 영국을 찾을 일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런던은 말고 내가 살던 영국 남동부 펠릭스토우, 그곳 사람 발음으로는 두 번째에 엑센트가 붙는 휠릭스토, 그곳은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서퍽 펠릭스토우

Felixstowe, Suffolk, UK

2013. 3.

 

배경음악: 지부리 애니메이션 마녀의택급편 중 바다가 보이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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