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 풍차마을 잔세스칸스
Zaanse Schans, Zaanstad, the Netherlands
2012. 8. 23.
어린 시절 나는 흑백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던 한 회 분량 20여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보고 꿈을 키웠다. 내 또래 많은 남자 아이들도 마징가 제트를 보고 로봇 과학자를 꿈꾸었으리라. 나도 마징가 제트를 좋아했지만 그보다는 플란다스의 개가 더 좋았고 장년이 된 지금에도 내 가슴에 플란다스의 개가 남아 있다. 내가 이런 애니메이션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이유는 애니메이션 속의 꿈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무렵부터이겠지만 한편으로 그때 내가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의 거의 전부가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알고 난 이후이기도 할 것이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나는 그 애니메이션들이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이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꿈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플란다스의 개를 따뜻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가슴 속에 품고 있다.
플란다스의 개를 보던 어린 시절 플란다스가 대체 어디에 있는 곳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던 풍차와 등장인물들의 복식, 네로의 개 파트라슈가 끌던 우유통을 실은 수레 등등으로 볼 때 그곳이 네덜란드의 어디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 어린 시절을 훌쩍 뛰어넘어 장년이 된 지금에야 플란다스가 오늘날 벨기에의 동쪽과 네덜란드의 남서쪽 저지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다 협소하게 플란다스의 개가 그리는 공간적 무대가 어디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림을 잘 그렸고 그림을 좋아했던 주인공 소년 네로가 그토록 관람하기를 갈망했던 대가의 그림이 오늘날 앤트워프(Antwerp) 대성당의 제단화로 걸려 있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작품이었으니 아마도 플란다스의 개의 무대는 벨기에의 앤트워프 근처 어디쯤이었으리라.
작년 여름 북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벨기에의 브뤼헤(Brugge)과 브루셀(Bruxelles)을 찍듯 지나쳐 왔다. 잠시 앤트워프(Antwerp)를 찍을까 고민을 했지만 그곳에는 그다지 볼 것이 없다는 의견이 다수라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벨기에 찍고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근교 흔히 풍차마을로 알려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에 해질 무렵 도착했는데 석양 아래 줄지어 늘어선 거대한 풍차와 제방 둑길 위에 서니 그제야 이 둑길을 따라 파트라슈를 데리고 네로와 아로아가 노래 부르며 다가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앤트워프를 지나쳐 버릴 일이 아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세상사는 일이 다 그렇듯 여행도 그렇다. 돌아보면 살짝 아쉬움을 남기는 것, 그 아쉬움은 우리가 다시 길을 나서게 되는 힘이 된다. 다음 봄에는 플란다스의 개를 찾아서 앤트워프에 들려 볼까 한다. 201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 풍차마을 잔세스칸스
Zaanse Schans, Zaanstad, the Netherlands
2012. 8. 23.
음악
푸치니 오페라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피아노 첼로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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