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020 HWP
아무리 코로나 사태로 시국이 엄중하기로 지난 연말 인사이동에서 물을 먹어서 이제 회사에서 뒷방 노친네 신세가 되어 버린 친구를 위해 위로주 한 잔 사지 않을 수 없어 어제 영등포 맛집으로 알려진 곳에서 약속을 잡았다. 퇴근 후 약속 장소에 도착해보니 평소 퇴근 시간 즈음에는 길게 줄을 서야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유명 맛집 자리 상황은 반 이상 비어 있었다. 좋은 일로 만난 것이 아니라서 그랬던지, 빈 자리가 너무 많이 보여 그랬던지 음식 맛이 예전만 못했다. 거듭 이 엄중한 시국에 어렵게 마련한 자리라 1차로 자리를 파할 수는 없어서 음식점 근처 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점의 문을 열자 주점 주인분이 반색을 하기로 반겨주니 감사하다 농을 던졌더니 어제 한 팀을 손님으로 받았고, 오늘은 아마 우리 팀이 유일한 손님이 될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리라.
술이 거하게 취해 물 먹은 친구에게 '이왕 먹은 물이니 가을 비에 젖어 시멘트 바닥에 착 달라 붙어서 아무리 빗질로 쓸어도 쓸어도 쓸려 나가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착 달라 붙어 있으라' 하나 마나 한 위로의 말을 전했고 내가 '조직'에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냐는 친구의 울분에 자네 잘못은 하나도 없고 자네 나이가 문제일 따름이다, 역시 하나 마나 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나의 위로 아닌 위로를 두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친구의 볼멘 소리에 다 같이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는데 그렇다, 우리 역시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과 여야대표가 코로나 사태를 앞에 두고 초당적 협력을 구하고 응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제1야당이라는 대표라는 자가 대통령 앞에서 외교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경질하고 대통령은 대국민 사죄하라 일갈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그 소식을 접하며 그저 너털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데 나 역시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오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