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금정산 산행을 마치고 귀가를 위해 부산지하철 1호선 범어사역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힘겨운 산행 끝에 목이 칼칼하기로 막걸리 한잔 생각 가득하여 역 주변 눈에 띄는 허름한 주막 문을 열었다. 차림표를 보니 부추전 4,000원 막걸리 한 병 3,000원이다. 막걸리 한 병이랑 부추전 하나 주문했더니 주모 말씀이 “정구지 찌짐요?”하고 되묻는다. 그렇구나, 여기가 부산이구나 했다. 내어온 정구지 찌짐을 보니 흰 밀가루를 물에 풀어 소금 간을 해 딱 정구지만 얹은 찌짐이었다. 심지어 식용유 마저 찌짐이 프라이 팬에 늘어 붙지 않을 만큼만 최소량을 두른 것 같아 내어온 정구지 찌짐 씹는 맛이 꼭 구워낸 풀죽 씹는 맛 같았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니 이 맛이야 말로 요즘 ‘고향의 맛’으로 방송에 소개되는 지금 내 입맛을 유혹하는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 매콤 달콤 쌉싸름한 향신료로 범벅이 된 그런 맛이 아니라 내 어릴 적 먹던 정구지 찌짐 그 맛 아니던가 싶었다. 처음 정구지 찌짐 한 쪽 맛을 보고서 아무래도 이 정구지 찌짐으로는 막걸리 한 병조차 다 조지지 못할 것 같아서 김치를 청해 막걸리 잔을 비워내며 간간히 정구지 찌짐을 먹다 보니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워낼 즈음에는 얼추 반 이상 정구지 찌짐을 먹었다. 그게 이 맛이, 내 어릴 적 먹던 정구지 찌짐의 바로 그 맛이라 그랬던지 아니면 고된 산행 끝의 시장기 때문이었던지 모르겠지만 내 못 찍은 사진을 보니 다시 이 집에서 정구지 찌짐을 안주로 막걸리를 청해 마실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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