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장 보러 큰 마트에 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술꾼이 주류 판매대를 지나 칠 수 없다. 전통주에 맥주에 위스키 코너를 기웃거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와인 코너에서 특가 판매 중이다. 술꾼은 술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주당 말석을 자처하기로 어찌 와인이라고 외면하겠는가? 주당 상좌 한 분의 귀한 가르침을 접한 뒤로 와인이라면 까베르네 소비뇽 베이스인 에스쿠도 로호(Escudo Rojo)를 최고로 치나 술 추렴에 지출이 적지 않은 행자 처지로 그 가격마저 부담스러워 가성비를 종합할 때 까시제로 델 디아블로 까베르네 소비뇽(Casillero del Diablo Cabernet Sauvignon)을 최고로 친다. 그런데 평소 병당 이만원이 넘던 내 최애 와인을 세 병 묶어 병당 만원에 판다지 않은가? 횡재한 기분까지 들어 와인병을 손으로 운반할 수 있는 최대량이 얼마일까 가늠해본 후 까시제로 델 디아블로 까베르네 소비뇽 여섯 병을 사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물론 와인 여섯 병이 담긴 비닐봉지를 쥔 손가락은 떨어질 듯 아팠지만 그 고통은 금요일 늦은 밤 케쳡에 찍어 먹는 나쵸를 안주 삼아 와인 한병을 조지는 이 행복한 기분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사는데 좋은 술과 좋은 노래와 함께 하는 이 깊은 밤의 사소한 행복을 넘는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