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원제가 "Prisoners of Geography"라서 직역하자면 '지리의 포로들'이 되겠는데 지리 조건이 세계 여러 나라의 국내 및 국제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하는 점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 팀 마샬(Tim Marshall)의 아이디어는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 제러드 다이어몬드(Jared Mason Diamond) 이른바 지리 결정론을 충분히 답습하면서 특히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딘 이유를 분석한 장에서는 아예 제러드 다이어몬드의 이론을 인용하면서도 국제 관계에 정통한 저널리스트답게 지리 조건과 결부된 세계 여러 나라의 간략한 지난 역사와 현재에 당면한 문제들, 강대국간의 패권경쟁, 국가 간의 갈등을 소개하고 있어서 학자가 쓴 글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고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한반도 문제를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 등 주변 강국들의 경유지 즉 종속변수로 보고 있고 또 그 미래를 썩 밝게 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북한을 평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과한 비약과 억측을 내세워 읽기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는 않다. 하기야 북쪽 사람들 하는 일이 나조차 황당할 때가 많은데 이 영국인의 눈에는 어찌 비칠까 생각하니 저자가 심했다 보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하다. 직접 경험한 바이기도 하나 오늘날 한반도의 남쪽, 우리 대한민국이 꽤 괜찮은 나라, 꽤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인식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심어준 데에는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공이 지대하다는 점을 이 책을 읽으며 씁쓸하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쨌든 세상 구경 중 제일 재미진 구경이 남 싸움 구경이라고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집구석 싸움은 어차피 내가 감당해야 할 싸움이니 그렇다 치고 책을 펼쳐 놓고,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스케일 크게 국가 단위의 ‘남의 집 싸움’을 읽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덧붙여, 오래 전에는 참 읽어주기 민망하다 싶을 정도로 번역이 엉망인 책들이 많았는데 요즘 번역된 책들을 읽으면 혹시 이 책이 원래부터 우리말로 쓰여진 책이 아닐까 괜한 의심이 들 정도로 번역이 훌륭한 책들이 많다. 이 책도 기꺼이 후자의 범주로 분류하겠고 이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일 거라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