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오래 전 일이라 봄축제였던지 가을축제였던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내가 가수 김광석을 처음 본 것은 대학 신입생 때 맞은 축제 기간 중이었다. 늦은 저녁 학생회에서 초대한 가수들 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김광석과 안치환과 송시현을 처음 봤고 그 이름을 들은 것 역시 그때가 처음이었다. 역시 대학 축제의 피날레는 학생회 친구들의 무등 타고 등장한 재야운동가 백기완이었고 지금 대학 축제가 어떨지 모르지만 그때 그들은 우리 세대의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안치환은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광야에서」와 같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대표곡을 연이어 불렀고 이어 김광석이 출연했는데 김광석은 그랬다. “푸른 가을 하늘에 쓰는 편지 한 장”으로 유치한 팝송이나 듣던 나를 한 곡 노래로 단숨에 압도해 버린 것이다. 반짝이 조명이 흔들거리던 밤 하늘을 배경으로 노래하던 송시현의 다음 노래는 들리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서 김광석이야말로 멋진 가수라고 감탄을 연발하던 나를 보고 대학 동기 강군 지금은 그토록 갈구하던 본인 희망대로 스튜어드가 되어 그 역시 지쳐가는 한 생을 꾸리며 살고 있을 대학 동기 난봉꾼 강군의 한마디만 오래도록 귓전에 맴돌았다.

 

"근데, 니 김광석이를 몰랐드나?"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대학 졸업하고 세상에 나왔으며 그 세상살이가 팍팍해져 가고 젊은 날 한때의 나를 사로잡았던 김광석의 노래마저 심드렁해져 가던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죽음이 방송전파를 탔다. 다시 그로부터 몇 년 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다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김광석의 목소리를 듣고 잠시 멍했다. 그 기분은 서가 구석에 처박혀 누렇게 표지가 바랜 옛 소설의 갈피에서 불쑥 나타난 누군가에게 보내려다 만 편지 한 통을 발견한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순간 나를 사로잡은 영화 대사 한마디. 북조선 인민군의 오경필 중사는 남쪽 경비병과의 위험한 JSA에서의 밀회 중에 이렇게 말했다.

 

"근데, 광석이는 왜 그리 일찍 죽었데니. 우리 광석이 위해서 딱 한잔만 하자."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와 종로의 맥주집에서 그제야 김광석을 위하여 맥주 한 잔 단숨에 들이켰다. 그로부터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는 노래가 김광석이며 푸른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쓴다는 노래도 좋지만, 이등병의 편지도 좋지만 언제나 시작은 「그루터기」다. "푸르던 날 어느새 물든 단풍"과 함께. 

 

그루터기

한동헌 작사

한동헌 작곡

김광석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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