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는 금강(錦江) 하구에서 발견한 한 무리 철새들의 비상은 아름답다. 저 철새들은 알래스카에서 베링해를 건너고 캄챠카반도와 사할린을 넘어 한반도의 등뼈를 따라 남하하다 추풍령에서 남서로 방향을 잡았으리라. 그리고 노령산맥이 서해를 향해 내달리며 허공으로 밀어 올리는 기류를 타고 내려와 가을의 미련이 충만한 금강 하구에 잠시 날개를 접은 철새들이리라. 저들의 여행은 아직 반도 끝나지 않았다. 서해를 건너고 양쯔강 하구에서 잠시 지친 날개를 접은 다음 다시 메콩 델타와 수마트라의 밀림을 건너 이윽고 저들이 머물 곳은 센타우르스가 밤 하늘을 밝히는 남반구 별자리의 아랫녘이 되리라.
저 철새들이 여행한다는 15,000킬로미터는 제트 여객기가 쉬지 않고 열 다섯 시간을 날아야 도달할 거리다. 그 아득한 거리를 도요새 무리는 오직 가냘픈 날개 짓으로 날아야 한다. 추락하지 않고 거기에 닿기까지 새들은 얼마나 무수한 날개 짓으로 허공을 휘저어야 할까? 얼마나 많은 열량을 태우며 태워 날개 죽지를 저어야 할까? 화석 연료를 태우며 날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새들은 하구의 조개 껍질을 깨트려 취한 조악한 먹이를 날갯죽지 근육으로 태워 새들은 선사(先史)의 하늘로부터 날아와 오늘도 15,000킬로미터 여정을 철 따라 날아간다. 질량과 에너지가 불변한다는 자연의 법칙은 저 경이로운 미물들의 머리 위에서도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부는 드높은 산맥을 따라 높이, 기나긴 해변을 따라 멀리, 그렇게 바람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거기에 닿을 수 있다. 그러나 산맥을 타고 치솟는 바람은 언제나 새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불어주지 않고 한번 잃어버린 고도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너무도 숨이 차다. 그러므로 어느 바람 자는 날 중천의 창공에서 도요새 무리는 상승기류를 기다리며 목을 최대한 길게 뽑고 다리를 최대한 길게 뻗어 공기 저항을 줄인 채 쉼 없이 날개를 저어야 한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금강 하구의 철새들과 툰드라에서 같이 여름을 보낸 수 만년, 수 십 만년 어쩌면 수 백, 수 천 만년 고래(古來)의 또 다른 도요 족속들은 남서(南西)로 진로를 잡아 바이칼 호수에서 지친 날개를 가다듬고 텐샨(天山)을 넘어 히말라야를 넘고 있으리라. 히말라야 극한의 준령을 넘는 철새들의 앞 길에는 깎아지른 수 천 길 낭떠러지 단애와 고산의 엄혹한 눈보라만 있을 뿐 날개 접어 쉴 곳이 없으니 날아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든 바람 한 점 없는 명징한 고산의 햇살을 만나든 오직 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휘젓는 날개 짓에 모든 근육을 태운 어느 가엾은 도요새는 어느 순간 스스로의 심장마저 태워 설산 위에 떨어져 박제가 된다. 고속도로에 차를 얹은 사람들에게 계절은 없고 오직 전방의 길만 있듯 창천 하늘 높이 날으는 도요새 무리에게도 계절은 없고 오직 날아갈 길만 남았다. 아니면 죽거나. 남동으로 진로를 잡은 철새들도 그렇게 오오츠크해를 건너 금강 하구에서 잠시 지친 날개를 접었다. 군산에서 일요일 오전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상경하다가 금강 하구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났다. 고속도로에는 오직 전방만 있다. 40킬로미터쯤을 조이 더 달리다 불현듯 서천인터체인지에서 차를 돌려 국도를 타고 금강 하구에 닿았다. 그 다리 아래 갈대밭 앞에서야 미련을 남기는 가을은 내게 손을 흔들었는데 길을 재촉하는 아내와 아들의 조바심마저 아름다웠다. 그때 갈밭을 헤치고 한 무리의 새들이 청명한 강 하구의 가을 아침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오늘 오전 어느 산악인이 지난 봄에 등반 사고로 숨진 채 해발고도 8,750미터의 에베레스트에 남겨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러 떠나리란 보도를 읽었다. 산악인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고립무원의 설산을 등반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들이 산에 오른 이유는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산 위로 도요새가 날아가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에 박제된 동료의 시신을 짊어 지고 내려올 산악인의 앞 길에 한 마리 도요새의 시체가 박제되어 얼어 있을지 모를 일이며 그의 오랜 스위스 나이프로 도요새의 앙가슴을 가를 때 그는 터져 그대로 얼어버린 작은 심장 하나를 발견할지 모를 일이다. 그 사이에도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하며 자꾸만 날아갈 것이다.
10년 전 잡문을 다시 포스팅 하는 기본이 마치 오래 전 똥폼 지대로 잡은 내 모습을 담은 옛 사진을 보는 것처럼 묘하다. 탐조(bird watching), 새 관찰해보겠다고 영국에서 더럭 사온 스코프(spotting scope)는 간혹 보름달만 쳐다볼 뿐, 서재 장식품으로 들어앉아 있다.
송창식
"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