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엉, 이불빨래, 2016

 

작정을 하고 찾아간 전시는 아니었고 우연히 찾아간 서울미술관에서 「연애의 온도」라는 전시를 봤는데 그 중에 퍼엉이라는 작가의 그래픽 작품을 프린트하여 전시해 놓은 코너가 있었다. 모두 스무 점 연작 작품의 대표 제목이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였다. 글쎄, 연애가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렇기만 한가? 그 스무 점의 작품 중 「이불 빨래」라는 작품 한 점이 눈에 들었는데 그 작품을 보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이 ‘대체 저 옷차림으로 어떻게 이불 빨래를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불 빨기는 고된 노동인데 그림 속 남녀의 표정은 달달하기 짝이 없었다. 이쯤 되니 작품은 상상화의 범주에 속한다 하겠는데 달리 생각해보니 이 달달한 상상마저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 팍팍한 세상 험한 세월을 어찌 견디고 또 건너갈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아무튼 이불 빨래에는 연애를 대표하는 무슨 로망 같은 것이 있는 것인지 그림을 보면서 오래 전에 선남선녀가 함께 이불 빨래를 하며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듣는 캔 커피 광고 영상이 떠올랐다.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1994년 홍콩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곡인데 그 이전부터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즐겨 듣던 나로서는 보지도 못한 영화보다 중경삼림이 중국 사자성어인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대단찮은 그림 한 장을 두고 중경삼림과 지나온 시절을 못 쓰는 글로 풀어 놓자 생각해보니 객쩍고 실없다는 생각만 앞설 뿐 이불 빨래에 얽힌 잡문은 여기서 마무리 하고 흥겨운 옛 노래나 간만에 듣고자 한다.

 

'○ 플레이리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루터기  (0) 2019.10.17
1943년 3월 4일 생  (0) 2019.09.25
고흐의 노란색  (0) 2019.08.28
비 내리는 거리에서  (0) 2019.07.27
비는 내리고  (0) 2019.07.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