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t of Cicero in the Capitoline Museums, 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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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 시기는 로마의 정치체제가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는 기원 전후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이 시기 로마 역사서의 행간에 등장하는 뭇 인간군상 중 빠져서 안 될 이름이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다. 법조인, 저술가로 활동했고 웅변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정치에 입문해서는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 공화정 하에서 최고 지위인 집정관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는 로마의 권력을 한 사람이 독점하게 될 황제정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던 공화정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그 수장을 자처하기도 하였으니 다시 말해 이른바 공화파의 나팔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공화파 혹은 공화정이라는 이 말이 참 묘하다. 사전적 의미로 공화정이란 민주공화국인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체제를 일컫는 것으로 이는 당시 로마의 사정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서 누구에 의해, 또 언제부터 우리가 당시 로마의 정치체제를 공화정으로 번역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로마야말로 대외적으로는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으로 얻어진 약탈경제, 대내적으로는 노예경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던 고대 국가여서 현대적 개념의 공화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당시 로마 정치체계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권력과 경제적 이권을 나누어 먹는, 굳이 말하자면 소수의 특권 귀족정치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오늘날의 공화정 체계와는 아주 달라서 "로마의 공화정"이라고 표현하는 글을 보면 애초에 이런 번역에 어떤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품게 된다. 당시 키케로가 남긴 말과 글을 보면 이 귀족정치을 부정하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세력 혹은 사람을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며 비난과 저주를 퍼붓고 있는데 이는 곧 소수의 특권층이 권력을 나누어 먹으면 국가를 수호하는 일이고 그것을 혼자 독차지 하려 들면 국가를 부정하는 일이라는 참 해괴한 논리가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귀족정치 옹호자들에게 반기를 들고 권력 투쟁에 나선 사람들, 그라쿠스 형제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지지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기득권층의 탐욕으로 가진 것들을 모두 잃고 도시 빈민으로 내몰린 바로 그 로마의 시민들이었다. 이렇게 보면 키케로와 그 일당들에게 국가와 국민이란 곧 자기네들 자신이며 자기 자신들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물론 키케로 일당들이 정치권력을 두고 다투는 것이 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감추려고 거기다 국가나 국민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고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국가는 곧 자기들 자신이라는 굳건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키케로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로마의 공화정은 해체되고 로마의 역사는 전제군주인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으로 이어졌다. 키케로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굳게 지키다가 황제가 보낸 군대의 칼에 맞아 죽었다. 이를 두고 역사는 키케로가 공화정에 대한 정치적 신념을 지키다가 황제에게 살해 당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사이비 공화국 로마가 아닌 진짜 민주공화국인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뻔질나게 입에 담는 위정자들을 본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국가와 국민은 키케로의 머리 속에 담긴 그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국가와 국민을 일컫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흉상으로 남은 키케로의 모습 위에 오늘날 이 땅의 위정자들 얼굴들이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위대한 저술가, 웅변가, 정치인, 정치철학자로 소개되는 키케로는 또한 어마어마한 재산을 긁어 모은 거부이기도 했다. 오래 전 지인이 말하기를 이미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재물에 대한 사심이 없지 않겠느냐, 그러니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서 '나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훨씬 좋은 공부를 한 사람이 왜 이런 어처구니 없고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을까?' 하며 마음 속으로 놀랬다. 많이 가진 사람이 더 이상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혹은 그 욕심을 다소간만이라도 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의 역사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미담으로 가득했을 것이고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되어 있겠지. 오늘, 이 나라 민주공화국 정가에서 벌어진 설왕설래를 뉴스를 통해 접하며 흉상으로 남아 전해지는 키케로의 얼굴이 수도 없이 자꾸 오버랩 되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돼지 같이 살찐 어느 정치인이라는 개자식의 얼굴 위에 포동포동 살이 찐 키케로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은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