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루브르박물관, 튀를리궁전, 콩코르드 광장 근처

2013. 5.

Paris, France

 

파리 콩코르드(Concorde) 광장은 루이15세 치세였던 1755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었다. 광장은 루이15세 광장이라 불렸고 왕의 거대한 기마상이 들어서 왕정의 권위를 드높였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왕정은 무너지고 권력의 폭정에 성난 군중들의 분노를 등에 업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루이15세 광장은 혁명광장(Place de la Revolution)이 되었고 왕의 기마상은 철거되었다. 혁명의 광장에는 사람의 목을 단칼에 자르는 기요틴(guillotine) 단두대가 설치되어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힌 왕 루이16세가 광장에 운집한 프랑스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혁명광장에서 목이 잘렸다. 그의 아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도 혁명광장에서 잘렸다. 왕의 목을 자른 혁명의 지도자들은 분열했고 목숨을 건 치열한 권력투쟁에 몰두했으며 루이16세의 목을 자른 당통(Danton)도,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도 콩코르드 광장에서 목이 잘렸다.

 

왕과 혁명가들의 피가 뿌려진 드넓은 광장 위로 쿠데타를 일으킨 후 스스로 황제를 칭한 포병장교 나폴레옹이 개선행진을 벌였다. 나폴레옹은 광장으로 연결된 샹젤리제 거리에 개선문을 세웠는데 샹젤리제 거리가 얕은 오르막길이어서 광장에서 개선문을 쳐다보면 마치 개선문이 광장을 알로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프랑스 역사가 왕정에서 혁명정부로 다시 왕정으로 다시 공화정으로 요동치는 동안에 광장의 이름도 왕의 광장이었다가 혁명의 광장이 되었다가 종국에는 콩코르드, 화합(concorde)의 광장이 되었다. 화합이 결론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었다고 봐도 되겠다. 그것도 역사다. 가까이는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프랑스 군대를 거침없이 무너뜨리고 겨우 6주 만에 항복을 받아낸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개선행진을 벌인 곳도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광장이었고 4년 후 프랑스에서 독일군을 몰아낸 양키들 미국 군대가 개선행진을 벌인 곳도 그 광장이었다.

 

그래도 파리는 무엇이 들어서도 런던에 견주어 스케일이 컸다. 통 큰 궁전 통 큰 성당 통 큰 미술관 그리고 통 큰 광장이 있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를 패배로 몰아붙였던 트라팔가르 해전의 주역 영국 넬슨 제독을 기념하여 만든 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규모는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견주어 명함도 못 내민다. 트라팔가르 광장은 큰 길(The Mall)과 연결되어 있고 그 길 끝에 버킹엄 궁전이 있다. 한때 버킹엄 궁전의 정원이었던 큰 길의 가로 숲은 런던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되었다. 런던의 그 큰 공원들 대부분은 과거 왕궁의 정원이었고 왕실의 사냥터였는데 이제는 모두 런던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되었다. 런던의 궁전 규모도 파리의 궁전에 견주어 역시 명함도 못 내민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서유럽 역사 상 최대의 굴욕적 참패를 당한 프랑스는 그때부터 영영 왕정의 막을 내렸는데 명함도 못 내밀 규모의 왕궁에서 살던 영국 왕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오래 전 어느 여름의 초입,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서서 못 찍는 사진들을 찍으며 런던의 트라팔가르 광장을 생각했다. 그것도 역사다.

 

유시민은 근간 『유럽 도시 기행』 1편 네 번째 도시로 파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나처럼 유시민도 루브르에서 걸어 나와 튈르리 정원을 거쳐 콩코르드 광장을 건너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 개선문에 도착했다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 유시민은 루브르박물관은 관람해도 후회, 관람하지 않아도 후회라고 소개했는데 나는 관람하지 않는 후회를 택했다. 사흘 동안 파리와 베르사유를 둘러봐야 하는 빠듯한 일정을 생각하니 도저히 루브르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관람할 여유를 만들기 어려웠다. 내가 먼저 유시민과 거의 비슷한 동선으로 파리의 랜드 마크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파리와 런던의 차이점을 생각했는데 영국과 런던을 소개하는 수준 높은 여행기가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쉽지 않다는 것도 런던에서 생활할 때 파리에 여행을 다녀온 그리고 이제와 유시민이 파리를 소개하는 글을 읽고 파리에서 담아온 사진들과 옛 이야기를 포스팅 하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다. 이 점에서는 영국이, 런던이 의문의 1패를 당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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