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인강 로렐라이 언덕 근처

Lorelei, Germany

2013. 4. 4.

 

학창시절 내 음악교과 성적은 별로였고 노래를 잘하지도 못했지만 나는 늘 음악을, 노래를 좋아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좋아하는 노래를 아무도 몰래 혼자 불렀다. 어디 나만 야박한 세월 속에 성장했냐만 그때는 잘하지 않으면 좋아해서는 안 되는, 돌이켜 보면 야박한 세월 속에서 나는 성장한 것 같다. 

 

영국 살 때 부활절 연휴기간에 영국에서 스위스까지 차를 몰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영국에서 페리선을 타고 네덜란드로 가서 지나친 국경이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순이었으니 아무리 유럽이 좁다 해도 자동차로 여행하기에 먼 길이었다. 영국으로 돌아올 때 단거리인 프랑스 경유 코스를 두고 한사코 독일 쪽을 고집하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아내를 설득하며 독일 쪽에 구경할 거리가 많다니 이왕 나선 길, 좀 돌아가자 했다.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euschwanstein)에서 뤼데스하임(Rüdesheim) 찍고 미리 말은 안 했으나 다음 행선으로 염두에 둔 장소는 바로 로렐라이(Lorelei) 언덕이었다. 나는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혼자 좋아했고 독일 민요 로렐라이 언덕을 아무도 모르게 좋아했는데 슈베르트의 보리수는 어디서 자라는 보리수인지 알 길 없으나 로렐라이 언덕은 딱 장소가 정해진 곳이니 꼭 찾아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톰톰 네비게이션을 믿고 라인강이 내려다보이는 로렐라이 언덕에 도착, 사진을 찍었다. 여행 중 보아온 프랑스와 스위스의 진풍경에 비해 볼거리도 없는 독일 라인강변의 평범한 로렐라이 언덕까지 식구들을 데려왔으니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로렐라이 언덕에 오른 내 기분, 감개무량? 그때 내 그 기분 표현 못하겠다. 눈물까지 글썽이지 않았나 몰라.

 

로렐라이 언덕 다음 행선은 독일의 양수리, 독일의 두물머리, 라인강과 모젤강이 합류하는 코블렌츠였는데 톰톰 네비게이션은 로렐라이 언덕에서 코블렌츠로 도착하는 내내 라인강을 따라 열린 강변도로로 안내했고 강 언덕에는 오랜 고성과 끝도 없는 포도밭이 장관이어서 정말 계획하지도 않게 멋진 눈 호강을 했다. 그제야 멀고도 긴 여행길에 별 볼거리도 없는 로렐라이 언덕까지 가족을 이끈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라인강을 따라 멋지게 열린 그 도로를 따라 운전하면서 연신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을 반복하는 내 속내를 아내는 눈치채고 있었던지 모르겠다. 로렐라이 언덕에 도착하기 전 뤼데스하임의 기념품 가게에는 온통 쌍둥이 칼과 쌍둥이 가위가 가득 차 있었는데 그까이 꺼 그냥 사버리라는 내 채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을 만지작거리다 아무래도 여기 비싼 것 같다며 돌아서던 아내는 코블렌츠에서도 아헨에서도, 독일을 떠날 때까지 쌍둥이 칼과 쌍둥이 가위를 끝내 사지 못했다.

 

여행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와 막스앤스펜서(Marks&Spencer)에서 칼과 가위를 무차별적으로 사들인 아내는 귀국 후 일가친척에게 다 돌리고도 남은 것을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쌍둥이 칼, 쌍둥이 가위보다 무척이나 저렴한, 영국에서 산 중국제 막스앤스펜서 상표 칼과 가위는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난 오늘도 그 성능을 발휘하고 있다.

독일 라인강 로렐라이 언덕 근처

Lorelei, Germany

2013. 4. 4.

 

Die Lorelei · Richard Tauber 리하르트 타우버 노래 로렐라이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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