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각, 깊은 숨, 2018, 서울시립미술관
2018. 6.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모습 윤곽이 전시화면에 나타나는 설치미술작품을 본 적 있다.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심오한 예술적 뜻이야 알 수 없었지만 작품을 보는 내 모습 윤곽이 커다란 스크린에 비치는 게 재미있어서 한참 동안 그 작품을 구경했다. 그런데 그 작품이 흥미롭기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인 듯 하여 내 기억으로는 여러 전시작품 중 가장 관람객의 발길이 자주 오래 머물던 작품이 그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난 주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같은 모티브를 가진 다른 설치미술 작품을 봤다. 산업용 로봇팔에 웹캠을 달아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비추는 작품이었다. 로봇팔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 앵글이 달라지니까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모습도 다양한 앵글로 스크린에 등장하는데다 여기에 이미지 처리 프로세스를 가미해서 자못 그럴싸한 관람객 본인 모습이 스크린에 비춰지게 되어 이 또한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쪽 팔림은 순간이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사진판의 속어가 있는데 나도 영원한 예술을 위하여 순간의 쪽팔림을 무릅쓰고 설치미술 작품 스크린에 담긴 내 모습을 폰카로 담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나뿐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던 모든 관람객들이 자신의 모습이 담긴 작품 스크린을 폰카로 담기에 바빴다. 설치미술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셀카를 찍은 셈인데 차례를 기다리던 다른 관람객을 위해 얼른 자리를 내어주고 그제야 작품 옆에 붙은 라벨을 보니 조영각이라는 작가의 「깊은 숨」이라는 작품 안내가 붙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고 싶다. 오늘날 세상은 모든 사람들 손에 그 욕망을 실현할 미디어 도구를 쥐어 주어 미술작품 속에까지 모든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재미있는 작품이구나 싶었다. 비록 폰카에 담아간 그 작품 속 주인공을 보는 사람은 대개 자신 밖에 없을 테지만 그런들 어떠랴?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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