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지난 겨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미인」이라는 테마로 엮은 전시를 봤다. 유명해서 그에 얽힌 여러 복잡한 사연이 많은 건지 아니면 사연이 많아 유명한 건지 전시에는 유명한 천경자의 작품도 걸렸고 이인성의 작품도 걸렸으며 김기창의 작품도 걸렸다. 함께 걸린 샤갈과 르느와르의 소품은 뽀나스 같은 것이리라. 전시 작품들이 모두 서울미술관의 소유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서울미술관의 자산가치가 꽤 만만찮을 것이다.
미인이라는 테마에 이숙자의 작품이 없다면 말이 안되지 싶었는데 과연 이숙자의 작품이 두 점이나 걸렸다. 작품 아래로 초록색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청맥(靑麥), 푸른 보리밭과 그 보리밭 사이에 시커먼 음모를 드러낸채 앉거나 누운 나부를 그린 이숙자의 그림이 좋다. 내게 이숙자의 그림은 사연이나 의미를 달리 캘 필요가 없어 보이고 그 단순함이 그림을 좋아하나 그림에 대한 지식은 얕은 나를 매혹시키는 것이다.
서울미술관에 걸린 이숙자의 그림은 예의 그 보리밭과 나부다. 그런데 그 작품 옆에 초상화 작품이 한점 더 걸렸다. 얼굴을 보니 보리밭에 벌거벗고 앉은 그 여인인데 눈동자가 갈색이라 얼핏 이국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콧날과 인중, 입꼬리를 보니 전형적인 한국 여인이다. 작품 제목은 「장미모자를 쓴 여인 I」인데 머리에 얹은 보라색 장미, 파란색 장미보다 코사지로 가슴에 단 노란장미인지 흰 장미인지 둘 다 섞인 장미인지, 그 장미가 더 눈에 든다. 구도가 절묘한데 그 보다는 모델이 더 아름답다. 벌거벗고 음모를 살짝 드러낸 채 보리밭에서 손깍지 끼고 앉은 모델, 장미모자를 쓴 여인의 정체가 궁금하다.
'○ 아트 로그 > 어쩌다 전시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경자의 미인도 (0) | 2019.09.05 |
---|---|
우리는 주인공 (0) | 2019.06.26 |
상선약수 (0) | 2019.03.28 |
함부르크의 황제의 날 (0) | 2019.01.24 |
이스트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 (0) | 2018.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