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퍽 레빙턴

Levington, Suffolk, UK

2012. 5.

 

우리가 황금들판 하면 알곡이 영근 가을 논을 떠올리듯 벼농사를 하지 않는 서유럽 사람들은 황금 들판 하면 보리밭(barley fields)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퇴근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며 듣는 노래 제목이 「황금들판」(Fields of Gold)이다. 영국에서 끝없이 드넓은 보리밭을 처음 보고 영국에 사는 동안 지겹게 봤다. 맥주 원료로 빵이나 과자 같은 가공 식품으로 혹은 사료로 보리의 쓰임이 많은 때문일 것이다. 영국에 살기 전에는 넓은 보리밭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 가곡 보리밭을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 것은 보리밭에 얽힌 추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보리밭은 아련한 옛 추억을 일깨우는 기제임과 동시에 한편으로 에로티시즘과의 연관도 뗄 수가 없다. 누가 따로 그 의미를 가르쳐준 적이 없을 텐데 선남선녀가 함께 보리밭에 들어갔다는 표현을 보면 이들의 애정행각을 연상하니 말이다. 비단 속옷 입고 보리 매러 간다는 우리 옛 속담도 있다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보리는 벼처럼 물을 대서 경작하는 것이 아니라 밭 경작을 하는 것이고 또 빽빽하고 수북하게 자라니 이 보리밭 깊숙이 선남선녀가 들어가 무슨 일을 벌인들 밖에서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내가 그림은 잘 몰라도 오래 전부터 이숙자(李淑子)라는 분이 그린 보리밭 연작을 좋아한 까닭에 다 이유가 있다. 이분 그림에 표현된 여성 나체의 음모는 아무래도 수북한 보리수염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것인지 내 이어폰에 울려 퍼지는 「황금들판」(Fields of Gold)을 듣노라니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이 딱 그 장면 보리밭에 들어간 선남선녀의 모습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영국 보리는 여름이 수확 철이고 여름 날씨가 건조하여 모기도 없으니 우리 보리밭보다는 선남선녀가 사랑을 나누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야하면서 고요하고 맑은 멋진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 야하게 남기는 잡문이다. 원곡은 영국 가수 스팅(Sting)이 스스로 만들고 또 불렀는데 여자 목소리로 들어도 멋지고 야하다. 영국에서 찍어온 저 붉디붉은 개양귀비꽃이 사이사이 피어난 푸르디푸른 보리밭 사진도 야하고 또 야하다.

사진: 영국 서퍽 레빙튼 · 그림: 화가 이숙자 「이브의 보리밭」 시리즈

 

BGM

Fields of Gold by Dana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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