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버크셔 윈저와 윈저성
Winsor and Windsor Castle, Berkshire, England

2013. 4. 21.

당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기준으로 오늘날 영국 왕가의 아버지 쪽, 부계(父係) 혈통을 따지면 영국 왕가는 독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로부터 유럽 각국 왕실은 결혼을 매개로 통합 되거나 분열되는 일이 잦았는데 영국 스튜어드 왕조의 앤 여왕(1665-1714)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독일 하노버 공국의 제후이자 영국 왕실의 혈통을 이어 받았던 조지1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함으로써 영국에는 독일 혈통을 지닌 왕조가 열렸는데 이를 하노버 왕조라 한다. 왕실뿐 아니라 오늘날 영국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앵글로 색슨족 역시 기원후 5세기경부터 오늘날 독일 북서부 지역에서 영국 섬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 서로 지지고 볶는 사이기는 해도 왕실뿐이니라 국민들 역시 영국 사람과 독일 사람들은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야 현대 고고인류학과 유전학이 밝혀낸 성과를 바탕으로 보건대 현대 인류는 동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야말로 단일 종(種)이므로 인종이니 민족이니 하는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기는 하다만. 아무튼 영국 하노버 왕가는 더욱 번창해서 1837년에 즉위한 빅토리아 여왕 대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정점에 올랐고 양원제도(兩院制度)를 바탕으로 한 영국의 입헌군주제가 확고히 정착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역시 독일 제후국이었던 삭스-코버그-고터(Saxe-Coburg and Gotha)가의 왕자였으며 이 삭스(Saxe)와 앵글로 색슨의 색슨(Saxon) 역시 같은 지역적 뿌리를 두고 있으니 이래저래 영국인과 독일인은 뗄래야 떨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후 영국과 독일 관계는 그렇게 꿍짝이 맞게 잘 돌아가지 않아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과 독일은 세계 패권을 판에 올려놓고 그야말로 세계대전을 벌이는 적대국이 되고 말았다. 나라는 독일과 운명을 건 세계대전에 뛰어든 판인데 왕가는 독일색이 너무도 분명한 하노버 왕가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도 영국 국민들 보기에 참 모양 빠지는 일이라 이때부터 영국 하노버 왕가는 슬그머니 하노버라는 이름을 버려 버리고 “윈저 왕가”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윈저(Windsor)는 런던 서쪽에 있는 소읍으로 런던 시내 한복판 버킹엄 궁전과 함께 왕조의 별궁으로 쓰는 윈저성(Windsor Castle)이 자리잡고 있기에, 또 런던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아 아무래도 번잡하고 상대적으로 협소할 수 밖에 없는 버킹엄 궁전보다는 런던 외곽에 자리잡아 공간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고 또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윈저성을 왕실 사람들이 선호하였기에 뜬금 없기는 하나 왕조의 이름을 하노버 대신 윈저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 윈저가 역시 뜬금없이 먼 우리나라에서 술병을 채운 이름이 되고만 것은 아이러니 하나 아무튼 윈저왕조라는 것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덕수궁 왕조’ 식이 되려나? 런던을 관통하는 템스강 상류 윈저에는 또 영국 정통 사립교육의 명문, 아직도 여학생은 받지도 않고 남학생들은 제비꼬리가 달린 연미복을 입고 수업을 받는다는 이튼 스쿨(Eton School)도 자리잡고 있어서 오늘날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여 영국에 적을 두고 몇 해를 산 처지로 윈저와 윈저성 방문을 빼놓을 수 없던 터, 지난 해 화사한 벚꽃이 필 무렵에 식솔들과 함께 윈저성을 찾았더랬다.

 

그런 계절에 세상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 곱지 않은 것 있으랴만 햇살 아래 윈저성은 과연 웅혼하여 입장료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비싼데다 오늘날에도 엄연히 영국 왕가의 별궁으로 그 쓰임을 다하고 있는 궁전이라 일반 공개 구역도 쥐꼬리만큼 밖에 되지 않았을지라도 비싼 입장료가 전혀 아깝다 싶지 않을 만큼 좋은 구경을 했더랬다. 뿐이랴, 마침 그때는 1926년에 태어나 스물 일곱이던 1953년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1주년 기념식과 여든 일곱 번째 생신을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아 버킹엄궁전에서는 그저 콧뵈기만 봤던 영국 왕실근위대 의장대 연습 장면을 드넓은 윈저성의 연병장에서 마음껏 구경할 수 있어 즐거움이 더했다. 올 해 여든 여덟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을 통치하지는 않으시나 아마도 한동안은 잘난 영국과 그 연방국가의 백성들 위에서 정정하게 군림하실 듯 하고 손주까지 본 영원한 왕세자 웨일스 공(Price of Wales), 찰스의 속은 어머니 여왕의 만수무강에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한 채 주름으로 성근 얼굴마냥 쪼그라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아무려나 내 못 찍은 사진을 열어 보는 이 밤 내 심사는 지난 해 봄, 윈저성에서의 시간들이 아련하고도 푸근하다. 이 글을 읽는 분 중 혹여 런던에 들리실 기회가 있는 분이라면 런던시내 빅토리아역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윈저행 버스편이 다양하므로 번잡한 런던 시내를 벋어나 윈저를 꼭 빼놓지 말고 들리시기를 강추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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