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 │ 교황 율리우스 2세 │ 1512년 │ 런던 내셔널갤러리

Raffaello Santi de Urbino, Portrait of Pope Julius II, National Gallery, London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였다. 19세기 이전까지 라파엘로의 그림은 화가들에게 있어 말 그대로 교과서였다. 그 영향이 오죽했으면 그 반발로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회화사조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가 생겨났을까? 치밀한 구성과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듯한 완벽한 인체비례는 라파엘로 회화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분께서는 이 천재의 재능이 지상이 아니라 마땅히 천상에 있어야 할 것으로 여기셨을까? 천재화가로서의 명성이 하늘에 닿을 듯 했던 라파엘로는 서른 일곱의 나이에 지상에서의 삶을 접었다. 그가 남긴 자화상을 들여다보면 그의 이름대로 천사를 닮은듯 하다.

 

라파엘로의 대작 한 점이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걸려 있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를 그린 초상화였다. 율리우스 2세의 별명은 공포의 교황(The Fearsome Pope), 전사 교황(The Warrior Pope)이다. 교황권 강화를 위해 갖은 책략을 서슴지 않고 스스로 칼을 들고 전쟁까지 불사했던 세속적 교황의 전형이었다. 돈을 받고 성직(聖職)을 팔아 먹어 카톨릭 교회의 타락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렇게 얻은 권력과 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찬란한 개화에 크게 한몫 했다. 성당은 거대하게 건축되었고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미켈란젤로가 완성한 시스티나성당의 천지창조 천정화도 율리우스 2세의 음덕이 없었더라면 천상에나 존재했을 것이다. 교황은 나이 예순 아홉이던 1511년에 라파엘로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그때 라파엘로의 나이 스물 여덟이었다. 그 초상화가 시공을 넘어 내 눈 앞에 걸려있었다. 초상화 속에는 세파에 지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내셔널갤러리에 갈 때마다 그 초상화 앞에 걸음을 멈추었는데 라파엘로의 작품이라는 태그를 보고서도 처음에는 이 라파엘로가 내가 아는 라파엘로가 정말 맞는지, 혹시 다른 라파엘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림 속 인물이 교황 율리우스 2세라는 것을 알고 다시 내셔널갤러리를 찾았을 때 내 걸음은 이 초상화 앞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글로 읽는 율리우스 2세의 이력은 권력과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쥔 사람이었고 초상화 속 교황은 그 권위에 걸맞은 화려한 옷을 입고 금좌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교황의 얼굴은 꽉 다문 입으로도 감출 수 없는 생의 고단함에 지친 일흔 노인의 얼굴일 뿐이었다. 초상화에 얼굴만 남겨 두고 남루한 행색으로 덧칠을 한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싶을 그런 얼굴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보는 동안 그림을 주문한 교황은 이 그림을 좋아했을까 궁금했다. 교황은 그림이 완성된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라파엘로가 그렇게 빨리 지상에서의 삶을 접어버린 이유가 따로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나이 스물 여덟에 권력과 부와 명예 걸머 쥐었고, 그럼에도 세상사 덧없음을 그 나이에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23세로 추정되는 라파엘로의 자화상, 1506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Raphael, Self-portrait, Uffizi, Florence

 

'○ 아트 로그 > 내셔널갤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제들  (0) 2019.09.27
기마 초상화  (0) 2019.06.19
건초마차  (0) 2019.03.10
왕들의 경배  (0) 2018.11.29
렘브란트의 자화상  (0) 2018.11.25

+ Recent posts